3) 대중가요와의 접목
시조의 명칭은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나온 것으로 ‘시절가(時節歌)’란 ‘이 시절의 노래’라는 뜻. 명칭이 ‘가락’ 또는 ‘노래’와 연관이 깊은 것은 시조가 본디 노래로 향유되었던 사실과 관계.
시조와 대중가요는 모두 한 시대의 주된 문화층의 양식이었다는
1. 시조 문학
1.1. 시조의 개념
시조(時調)란, 고려 중엽에 발생하여 말엽에 완성된 형태가 나타나 조선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 우리의 대표적인 정형시이다.
‘시조’란 명칭은 원래 단가(短歌)로 불려 오던 것을, 조선 영조 때의 가객 이세춘이 ‘시절가조(時節歌調)’라는 이름으로
시조의 기본형에서 두 구 이상에서 각각 그 자수가 10자 이상으로 늘어난 시조이다.
시조를 형식상으로 분류하면 평시조 · 엇시조 · 사설시조로 나뉘는데, 평시조는 정제(整齊)된 형식적 틀을 깨뜨리거나 규범을 벗어나는 경우가 없다. 반면 엇시조와 사설시조는 이 같은 규범에서 벗어나 있다. 그 중
중에서도 사설시조는 중세적 질서를 거부하는 현실비판정신이나 평민들의 저항정신, 민중의식 등이 드러나는 장르로 보는 견해가 주류 시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이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후로는 ‘조선 후기 문학의 성격’이 학계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
1.3 시조 부흥 운동
1. 조선 민족의 특수한 문학 형식을 구현하기 위해
시조론이 대두.
2. 대중적이라는 장점 때문에 시조 부흥 운동이 성행.
3. 시조 부흥 운동 이후 시조의 내용보다 형식을 강조.
시조는 근대 이후 대표적 민족 문학 장르가 됨
민족주의와 계몽주의
이광수 는 애국 계몽 운동을
시조문학론』, 형설출판사, 1976.
이태극, 『시조의 사적 연구』, 반도출판사, 1981.
는 시조사적인 면에서 전체적인 조망을 하고자 하였지만 평면적인 연구태도를 견지하여 시대적 변화와 그 변화에 대응하는 문학의 위상을 밝히지는 못하였다. 후기시조의 전반적인 성격에 관한 논의에서 이룩된 중
시조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보통 시조라면 단시조(평시조)를 말하는데, 그 단시조라는 것은 신라의 향가나 고려의 별곡 등의 영향에 힘입어 고려 중․말엽 경에 그 형태가 확립된 우리나라 고유시가의 하나다. 그 형식은 3장 6 구요, 한 구의 구성 자수는 7자 내외가 되고, 4율박
시조의 형식과 명칭
시조는 조선조 오백 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창작되고 또 향유되었던 문학이다. 그러나 시조는 조선시대로 끝나지 않고 현재에도 그 창작이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조선조 때 시조를 가리켜 ‘古時調’라 하여 근대 이후의 시조와 구별하기도 하지만, 고시조나 근․현대의 시
시조를 그렇듯 많이 남긴 경우는 이세보가 유일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는 시조창작을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인식했음이 틀림없다.
그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가 그가 다루었던 다양한 질료와 주제 면이다. 자기 시대와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걱정한 시조를 비롯하여 유배·애정·도
시조문학을 산출하기 시작한 것은 16C 이후의 일이었다.
16․7C의 시조작가는 사대부들이 대부분이므로 이 당시의 시조문학은 사대부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시의 사대부 중 많은 사람이 시대적 상황 때문에 정치를 외면하고 산야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고 후진들을 양성하는 경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