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사 부분에만 치중되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임오군란은 갑신정변, 을미사변과 함께 19세기말 조선에서 일어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하나이면서 후자의 두 사건과 연계된 최초의 사건으로 한국근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
한국외교사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거문도사건과 주변열강의 역학관계 및 조선의 국가전략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현재를 가늠해보려 한다. 거문도 사건은 1895년 4월 15일부터 1897년 2월 27일까지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장기간의 다국적 철수외교를 통해 해소된 국제정치적 사건이었다. 임오군란과
한국 근대의 기본 성격을 파악할 때 반봉건과 반제국주의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다. 이 점은 한국 역사에서 근대의 시점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는데, 한국의 근대 시점 문제에는 6가지 정도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첫째는 조선 후기라는 견해이고, 둘째는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후 문호를 개방한 때라는
Ⅰ. 서론
한국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진영에 속하는 국가로서 양국은 안보면에 있어서 전통적 우호관계에 있으며, 공산주의의 침략 위협에 맞서서 협력관계에 있었다. 동서냉전이 종결되어, 공산주의 침략위협이 거의 없어진 후, 양국간 냉전시대에 성립되었던 우호관계가 유지될 지에 관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해였다. 즉 당시는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을 침범해 오던 때로서 10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제국주의의 통상요구를 거절해왔던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1873년), 이어서 권력을 잡았던 민씨 정권은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서 무장을 하고 한국을 침략하려는 계획(정한론)을 지닌
한국 현대사에서 행해졌던 빨갱이 사냥에 대한 몇 가지의 사례와 이를 토대로 마녀사냥과 유사점을 찾아보는 발표를 준비하였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유럽의 중세 사회에 있었던 마녀사냥과 유사한 사건은 여럿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빨갱이 사냥뿐 아니라 천주쟁이 때려죽이기 등 몇 가지의 예가 있
총탄을 방사
조선은 화선 공격으로 해적선을 불태워버림
* 결과
-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 침략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
- 벨(H.H.Bell) 아시아 함대 사령관: 진상조사, 생존자 구출과 더불어 거문도 점령 구상
- 미국 해군성의 분위기: 조선을 응징해야 한다 → 1871년 신미양요
교린질서와 국제법 질서의 충돌- 조-일, 강화도조약을 중심으로
교린질서 하에서의 조일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서계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다. 서계는 전통적인 요린 질서 안에서 확립된 외교문서의 일종이다. 따라서 이들 양식을 변경한다는 것은 단순한 형식상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사
1. 들어가기
서구 제국주의의 마수가 드디어 동아시아에까지 그 손길을 미쳤다. 러시아, 프랑스, 영국, 미국 등과 같은 열강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패권을 차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열강의 침탈에 대한 동아시아 3개 국가 - 청, 일본, 조선 - 의 대응은 각기 달랐다. 청의 경우 무역은
사건.
▶ 1조 : 조선은 자주국으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 청나라의 간섭없이 조선에 대한 침략을 자행할 수 있는 길을 모색
▶ 2조 : 20개월 이내에 부산과 그 밖의 2개 항구를 개항할 것을 규정하고, 2개 항구의 선정은 일본의 임의에 맡길 것.
→ 동해안에는 원산이, 서해안에는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