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양론과 궁리론
퇴계 학문의 기본적 성격은 주자를 표준으로 하여 도학의 철학적 근거를 밝히고 인격적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의 사상에는 성리설의 개념적 분석체계와 더불어 수양론의 실천방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학의 학문적 기본방법을 거경(경의 생활화)과 궁리(진리탐구)라
㉣ 방황과 홀로서기
율곡은 나이 열 셋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이때부터 문장이 날로 성취되어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그런 명성과 기대 못지않게 그의 학문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과 갈등은 더욱 커져갔다. 자신을 알아준 문장가 송인(宋寅)에게 보낸 다음 글은 그의 이러한 갈등을 단적으
3) 현장중심의 경영과 생산적인 대비 경영
퇴계는 단양군수로 있을 때 기아로부터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을 썼다. 백성들은 공평하고도 과감하게 구제하기 위해 촌락의 기아상태를 상세히 조사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사는 부하들에게 맡겨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약한 몸
6. 사단칠정에 관한 논의 과정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사단과 칠정은 본래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이 서로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은 권근의 ‘입학도설’에서부터 시작한다. ‘입학도설’ 가운데 ‘천인심성합일지도’를 보면, 마음에 리와 기라는 두 개의 원천이 있는 것으로 그
Ⅰ. 서론
동방의 주자 퇴계 이황, 퇴계는 우리들에게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낯익다. 매일 하루에 몇 번씩 만나는 퇴계, 우리는 이러한 퇴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윤리문화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조차,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퇴계에 대해 배운 부분이 거의 전부라 해도 될 만큼, 대학에 들어와서는
1762(영조38)년 6월 16일 사시(巳時)에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京幾道 廣州郡 草阜面 馬峴里)즉 오늘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정재원(丁載遠)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兒名)은 귀농(歸農)이라 했다.
다산은 부친에게서 글을 배웠고 부친의 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닦았다. 4세에 천
1. 시조의 정의
시조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서 발생하고 정제된 서정 시가로써 조선조의 전 시기와 개화기까지 생명력을 유지해 온 민족 시가이다. 즉, 한민족의 고유한 예술양식의 하나로서 국문학상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녀오는 시가형식의 시조이다.
그러나 ‘시조란 무엇인가’하는 물
2) 퇴계의 무오사직소(1558년)
I. 왕이 사람을 쓰는 도 – 현우예양(賢愚禮讓)의 이치
1. 일의 경중에 따라 큰 일은 재능이 큰 자에게, 작은 일은 재능이 작은 자에게 맡겨야 하며, 크고 작은 일에 모두 합당치 않을 경우 물리치는 것이 등용의 도.
2. 옛 성현의 말
i. 맹자: “가까운 신하들이 모두 ‘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로 경상우도와 경상좌도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였다. 퇴계는 소과(小科)․대과(大科)를 거쳐 조정의 요직에 나아가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였지만 남명은 평생을 산림의 처사로 일생을 마쳤다. 남명과 퇴계는 서신을 주고받았을 뿐 단 한번
한국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알려진 위대한 학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모든 사람들은 서슴없이 퇴계라고 가리킨다. 퇴계(退溪)의 이름은 황이요, 자는 경호, 호는 퇴계, 도옹 또는 도수이다. 연산군 7년(1501)에 태어나 1570년에 서거하였다.
퇴계의 생존 당시는 국내적으로 조선조 역사상 극심한 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