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예술)라 하였다.
이 밖에도 “차가운 예술, 환원적 예술, 오브제 아트”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1963년 뉴욕의 그린 갤러리라는 화랑에서 열린 <신작: 1부>라는 전시를 통해 져드, 모리스, 플래빈 등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1966년 쥬이시 미술관에서 열린 <기본구조: 새로운 미국과 영국의 조각전>
미술은 그 도전을 하나의 질서로 구축하였던 것이다.
2. 추상표현주의 개괄
추상표현주의는 1940-50년대에 미국화단을 지배했던, 미국회화사상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있는 회화의 한 양식을 가리킨다. 본래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은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해 사용했던 말로써, 미국평론가 알프레
미국추상표현주의의 성립과 전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경제공황과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새로운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되었으며 예술분야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대 추상표현주의는 근대미술의 정점으로, 미국미술
미술 상황이 2차대전 이후 미국 중심으로 이동되면서 각 지역마다 독자적인 미술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추상표현주의라는 명칭의 시작>
‘추상표현주의’라는 명칭’은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드 바>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 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해 사용했던 말로 형식은 추상적이나 내
미술로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일반적 능력을 창조적 능력으로 바라보며 존재를 정당화하는데 뒷받침 하고 있다.
추상표현주의 용어의 유래는 1929년 미국에서 전시되고 있었던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초기작품의 자유분방한 형상에 대해 미술평론가 알프레드 바(Alfred Barr)
미술활동이며 그 때문에 광고의 미적능력을 심리적으로 어필하는 현란한 색채 및 형태를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그 목표는 편견 없는 감수성이며 현대 환경의 시각적인 자극을 즉물적인 명료함을 위해 표현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2. 팝아트의 등장 배경
팝아트는 크게 추상표현주의의 쇠퇴와 앗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인 `내적 관계가 없는 단일한 전체성(올오버)의 공간`을 지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의 자율성 및 순수성 그리고 예술의 절대적 혁신으로서의 `비(非)예술-물체, 현실`이라는 20세기 특유의 예술개념과 관계하고 있다. 추상표현주의는 원근법을 거부하고 근접응시를 통해, 세부 간
있다고 천명했으며 이러한 퇴각은 그 자체로 영웅적인 행위로 생각되었다. 이렇게 사회에서 물러나서 그려진 그림들은 실제 세계에 대해 직접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팸 미첨 외, 『현대미술의 이해: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읽는 8가지 새로운 눈』, p. 66.
상품화를 수용하는 미술의 흐름
미술가 소피 타외브와 함께 1924년 파리 근처의 뫼동에 정착했다. 1920년대에는 초현실주의자들과 사귀었고 1930년 '세르클레카레' 그룹의 회원이 되었다. 또 바로 그해에 처음으로 '파피에 데시레'('찢겨진 종이들')를 만들었다. 1931년에는 '추상창조운동'에 참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다시 취리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