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안타깝게도 모두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취급되었다. 멍커는 이에 조용히 물러나 당요(唐堯) 이래 삼대(三代)의 덕정(德政)을 강술하였다. 이것을 통하여 고대 성왕(聖王)들의 치적을 널리 선양하고, 공손추(公孫丑)․만장(萬章) 등 문도(門徒)들과 [시(詩)][서(書)]를 강론하면서 콩쯔의
정치적 성취는 없었지만 그들은 모두 학문이 넓고 깊은 학자였다. 이사(李斯)나 한비(韓非)는 모두 쉰쯔의 학생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법가학설이 부분적으로는 유가(儒家)에서 연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쉰쯔의 학술사상
콩쯔는 [논어]에서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道之以政, 齊之
이것은 실학파의 태두라 하는 반계 유형원(1622~1673)이나 성호 이익(1681~1763)에 이르기까지 신분차이를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추세였고, 홍대용(1731~1783)의 시대에 와서 비로소 수직적 신분개념이 직능을 기초로 한 수평적 신분개념으로 전환되는 구상을 보였다고 평가된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일찍이
모두인간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인류학은 사회계약론 보다는 오히려 법과 법체계를 인간화하고자 했던 그로티우스와 푸펜도르프의 자연법에 대한 관점을 계승하고 있다. 아래는 인간의 ‘자연상태’와 ‘사회상태’ 그리고 사회계약에 대한 학자들의 관점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
인간본성을 따라 공익을 위해 서로의 의무를 다하고 이를 통해 서로간의 유대를 강화해야 할 의무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의 기초는 신의이다. 이는 “말해진 것은 잘 이루어졌다”는 데서 나온 용어로, 말한 것과 계약한 것의 불변성과 진실성을 의미한다. 키케로는 이어서 불의의 개념
동업 조합적 성격의 것으로서 소규모 수공업의 직업적, 경제적 개선을 요구하지만 여성들의 생활조건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다른 부류는 사회 속에서 여성의 지위에 관심을 나타낸다. 이러한 종류의 진정서들은 여성의 조건이 교육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여성의 정치적 권리의 결여에 대
정치경제론>을 집필하던중 자신의 역량의 한계를 느끼고 이미 집필된 논문 중 <사회계약론>만을 따로 묶어 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루소는 책의 앞머리 '독자에게'에서 밝혀두고 있다. 제 1장의 제 1부의 주제에서는 우리가 가장 흔히 알고 있는 루소의 명언이 나온다. "인간은 본래 자유인으로 태어났
인정에 이끌리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되며 냉철한 사고로 오히려 추종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강력한 리더십이 과연 얼마나 유효한지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
리더십은 이처럼 일찍이 정치학이나 사회학의 문제로 취급되어 왔다.
즐거워하고 근심한다. 이처럼 성인의 몸에 충만한 것이 ‘측은지심’이다. 그러므로 ‘인심을 미루어 인정을 실행’(推仁心 行仁政)할 수 있다.
1)인정학설의 이론적 기초 -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공자-“타고난 성품은 서로 비슷하나 후천적인 습성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라는 관점을 제기
콩쯔는 일찍이 노나라 사구(司寇)라는 직책을 맡았었다. 매우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또한 매우 정치적 치적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孔子年五十六, 由大司寇攝行相事, ……與聞國政三月, 粥羔豚者弗飾賈, 男女行者別於塗, 途不拾遺, 四方之客至于邑者不求有司, 皆予之以歸.” 이것으로 콩쯔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