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중주의 불교
신라시대 당시에는 귀족주의 불교와 일반 서민불교 사이에 여전히 괴리가 있었다. 당시의 승려들은 민중의 무지가 석가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민중을 외면했다. 그러나 태종 무열왕 당시 등용된 원효는 불교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는 학승으로서 높이 평가
불교의 입장과 중도적 해법,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판단 할 지 지금부터 알아보겠다.
Ⅱ. 불교의 죽음관
죽음에 대한 초기 경전의 기본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낱낱의 중생의 유형에 따라 낱낱의 중생이 죽고, 멸망하고, 파괴되고, 사멸하고, 목숨을 다하고, 모든 존재의 다발(五蘊, pañcakkhandh
Ⅰ. 서론
불교 사상의 전개 과정을 알아보기로 하자. 불타가 입멸(入滅)한 후, 불교는 소승 불교를 거쳐 대승불교로 발전하였다. 소승 불교는 수행자 자신의 정신세계에만 몰입하여 사회와는 분리된 엄격한 종교성과 개인의 해탈을 강조하였다. 이와 달리, 대승불교는 중생과 감께 하는 대중 불교이
대승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사유 방법이지만, 또한 대승불교의 사상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유 방법으로 평가 받는다. 용수의 「중론」 첫머리에는 ‘여덟 가지의 무엇이 아니다’(八不)라는 명제가 열거되고 있다. 상식적으로 말할 때 ‘무엇이 아니다’, ‘무엇이 없다’라는 부정
1) 선정 내용: 1장, 원효, 대승기신론소
2) 이 고전을 감명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
원효(元曉, 617-686)가 저술한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는 서분, 정종분, 유통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사상은 정종분에 할애되어 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는 한국불교 사상의 정수를 담은 대표적인 저서로, 불
불교정책은 전진과 외교관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당연히 국가의 지원이 따랐다. 순도가 머문 사찰이 ‘성문사’였음은 그것이 관청건물의 일부였음을 말해준다. 아도는 국적이 불분명하므로 개인 자격으로 고구려에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즈음 전진의 불교계에는 주로 대승사상이 유포
대승기신론의 중심 사상인 '일심(一心)'과 '여래장(如來藏)'을 설명하고 있다. 유통분은 책의 결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실천 방법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대승기신론소는 불교 철학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원효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불
3-3. 불교와 식문화
0 육식과 살생을 금함
0 술의 섭취 금기 시 함 :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하고 바른 행위를 막아 높은 경지의 도를 닦을 수 없음
0 승려들의 탁발 : 매일 아침 먹거리를 구하는 행위
0 대승불교 : 사찰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음
0 우유를 제외한 일체의 동물, 오신채 금기
☞ 오
불교를 널리 전파하는데 공헌한 사람이기도 하다.
2. 「대승기신론소」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대승기신론」는「금강경」「원각경」「능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의 근본경전인 사교과에 속하는 논서이다. 마명의 저작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치않고 산스크리트 원본은 발견되지 않은
불교 수련 단체인 수선사의 토대를 수립하기 위하여 평생을 진력하였다. 그가 제시한 종합적 불교 수행 방법은 불교가 억압받던 조선 왕조초에 한국 불교의 수행 규범으로 채택되었다.
지눌 사상의 골자는 대승(大乘)불교의 전통에 속한다고 단정할 수 있다. 그는 무지와 깨달은 또는 생사와 열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