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
고갱, 평화, 1889; 원시적인 미술의 대부분은 “한층 강화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강렬한 감동 그 자체를 목적화” 함으로써 성취된다고 주장하였다. 로저 프라이는 <시각과 디자인> (1920)
다리파나 청기사파 모두 당시 서구 사회의 물질주의로부터 벗어나서 정신의 세계 혹은 원시적인
Ⅲ. 러시아 19세기~20세기의 상징주의 [象徵主義, symbolisme]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상징파(象徵派)의 예술운동과 그 경향을 통칭한다. 상징주의는 자연주의와 인상주의의 객관적인 대상 관찰과 묘사, 실증적 표현에 반발해 일어난 19세기 말의 미술사조이다. 상징주의
프랑스와 터키가 교류를 시작하였을 때 이루어졌다. 프랑스와 터키는 17세기에 대사를 파견하는 교류를 가졌는데 1699년에 프랑스 대사 페리오Marquis Charles de Ferriol의 중개로 장 바티스트 뱅 모어Jean Baptiste van Mour 가 콘스탄티노플의 하렘들 중 하나인 ‘세라일’을 방
세기의 프랑스 및 이탈리아 아카데미의 이론가들은 과거의 시대와 장소를 표현할 때 의상•세부•배경 등이 정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기미술가, 특히 신고전주의자들은 새롭게 얻어진 고고학적인 지식에 힘입어 그 이론을 충실히 지켰다. 그러나 영웅이나 유명인물의 초상에서는 고대 옷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회화운동이다. 인상주의는 단일한 이념이나 명백한 원리를 갖는 유파라기보다는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다. 최초의 중심인물은 모네, 르노아르, 시슬리, 바질 등으로 이들은 마르크 글레이르의 제자들이었으나, 1963년 마네의 전시회 이후 아카데믹한 교습에 불만
19세기 말에 시작된 아르누보 양식은 1910년경부터 기능과 사회성을 중요시하는 건축, 공예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소멸해 갔다. 또한 아르누보 양식은 포스터나 잡지의 그래픽 디자인으로 대중화가 되면서 많은 양이 제작되었지만 질적으로는 퇴보하는 현상을 겪게 되고 그 형식만 표면적으로 따서 디
세기부터 조르조네, 브뤼겔 등이 독립적인 풍경화를 점차 등장시키며, 바로크기에 풍경화는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➀Van Eyck Jan
<겐트 제단화, 1432, Oil on panel, Each panel ,cathedral of St Bavo, Ghent>
천사장과 마리아 사이에 있는 열린 창문들 밖에는 성당과 목조 가옥, 길에 산책 나온 서민들, 지
제1장 고대의 음악
1. 음악의 기원
음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신화 전설에서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음악에 대한 경외심이나 민족에 따른 음악관의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추구하려는 시도는 18세기 이래 계속되어 왔으나 항상 큰 장애에 부딪쳤다. 예를 들면 유아의
존중하는 경향과 부합하여 17세기에 문학 분야, 특히 프랑스 희곡문학에서 전형적인 형태로 꽃피워(P.코르네유, J.B.라신, 몰리에르 등), 곧 유럽 전역에 파급되었다(J.드라이든, A.포프, G.E.레싱 등). l8세기 중엽 이후가 되자 음악․회화․조각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통일성․이론성의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