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의 불전인 대적광전이 없다는 것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는다.
극락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화엄강당은 물론이거니와 보물 제 449호인 고금당 등의 지정문화재와 무량해회. 만세루. 우화루. 요사채. 등 21동의 건물이 있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서 경상북도
화엄종, 법상종의 3대 종단으로 중기에는 천태종이 추가된 4대 종단을 중심으로 불교사상이 전개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불교계는 무신정권과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정치권력에 의존하게되어 일반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사상계의 주도권은 성리학으로 넘어가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율종은 자장율사께서 창종하고, 법성종은 원효대사, 화엄종은 의상대사, 법상종은 진표율사가 각각 창종했다.
이 5대 교종의 하나인 열반종은 경전을 대반열반경으로 하고 교육을 통해 수많은 고승을 배출했다. 신라의 대표적 고승인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도 열반종의 보덕성사에게 수학했다고 한다.
화엄종의 두 갈래에서 小異를 자르고, 大同을 묶어 하나로 돌아오게 한 균여의 공은 참으로 컸다. 균여는 화엄학의 거장일 뿐만 아니라, 신이한 자취를 남긴 고승이기도 했다. 그의 영이담 가운데 몇가지만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949년 光宗의 황후 大穆의 瘡疾을 고쳐주고, 대신 창질을 맡아 앓게
화엄종을 비롯한 6종파가 성행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당나라 유학 승려 출신인 사이초와 구카이가 각각 천태종과 진언종을 성행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불교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퍼졌으나, 가마쿠라 시대 이후 교세가 농민들 사이에서도 퍼져 전국시대에는 잇키를 주도하는 사찰도 생겼다. 불교는
: 김대성이 창건한 불국사(불국토의 이상)와 석굴암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시기를 정점으로 신라왕조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2. 선종의 전래
8세기 중엽 이후의 신라 화엄종이 학문적인 경향으로 나아가는 있는 무렵, 선사상이 전래했다. 본격적으로 선사상이 전래된 것은 9세기전반이다.
면을 제시해 준다. 불교 연기설화도 불교사 전개의 대세를 파악하는데 매우 유익하다. 태현과 법해가 기우제를 드리면서 법력을 과시한 연기설화는 당시의 화엄종과 법상종 관계를 알려주며, 원효가 낙산사의 관음진신을 친히 접하려한 연기설화는 의상과 원효의 교학을 짐작하는데 도움을 준다.
화엄종으로 대표되는 교종과 이에 대비되는 종교 세력인 선종과의 차별상과 더불어 진골 귀족과 지방호족의 차별상을 나란히 놓고 해석함으로써 나말여초의 시대변동을 이해하는 주요한 틀로 받아들여졌다. 한편 80년대 들어 교종과 선종, 왕실과 호족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극복하려는 관점이 제기되
선종/교종
교종
교종(敎宗)이란 부처의 교설 및 그것을 문자로 나타낸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종지(宗旨)를 뜻하며, 불어종(佛語宗)이라고도 한다. 교종은 구체적으로 《법화경》에 의거한 천태종(天台宗)이나 《화엄경》을 소의(所依)로 하는 화엄종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중국에 있어서의 대표적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