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찾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루어온 역사의 내면과 외면을 파악할 줄 아는 비판적 사고력을 갖게 됨으로써 앞으로의 발전에 대한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역사
임진왜란을 거치고 이어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사회는 반상의 신분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사회변혁을 거치기 시작했다.
양란의 결과, 농경지가 황폐화되었고 조정에서는 묵은 밭의 개간을 적극 장려했다. 이를 기회로 지배층의 대토지 소유가 가능했다. 따라서 대다수의 농민은 토지를
1. 조선 후기 시대와 한문학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후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제 1기 이다. 중세문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근대문학을 이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서로 얽혀 있으므로, 그 시기를 중세문학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고, 근대문학의 시발이
중국의 음료 문화를 생각하라고 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차(茶)이다. 그 만큼 차는 중국 문화와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중요한 필수품이다. 그렇다면 차를 마시는 습관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차를 언제부터 마셨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진대(晋代)에 쓰여진 『화
들어가며...
임진왜란 이후 병자호란 이전까지 조선은 명국의 참전으로 '재조지은'이라는 명분이 형성, 전개되었고, 조명 양국은 16세기 말~17세기초의 선조, 광해군, 인조 대를 거치면서 '재조지은 체제'가 각각 형성, 변형, 복구되는 관계를 경험한다. 명의 도움을 받아 임진왜란을 극복했고, 광해군의
Ⅰ. 들어가며
병자호란 직후 북벌론은 대청관계에 주체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왕의 주도하에 전개되었는데 대표적인 경우는 효종대였다. 당시 효종이 북벌론을 국책으로 적극 추진한 이유는 인조반정에 의한 왕위계승에 정통성 결여라는 문제가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왕위계승의 정
3. 조선의 성리학
-유교정치 기반의 확립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정치이념으로 내세우고 유교정치를 추구하였다. 유교정치는 덕치(德治)와 인정(仁政)을 근본으로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표방하였다. 유교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국왕과 신하가 유교적인 소양을 충분히 갖추어야 했으며 국가의
1. 머 리 말
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세종, 연산군, 광해군, 고종 등 조선의 왕 한둘 쯤은 알고 있고 대다수는 의무교육 덕분에 “태정태세문단세…“하며 조선의 27명 왕의 재위순서를 줄줄 외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지식과 별개로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느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