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교회란
교회는 교인들이 모이는 단순한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의 총체이다. 내 교회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교회이다. 주의 교회(His Church)는 울타리 경계선이 유동적이고 모이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는 것이 그 사명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선교의
교회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립하면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자만이 교회가 된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중생으로 이루어진다. 중생은 영적이어서 육체적인 눈에 식별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자기의 교회를 바로 아신다. 교회에는 외식자도 있고 불신자도 있으며 비중생자도 있다. 그
나라’에서 이제는 삶의 질이 강조되는 ‘쉼의 나라’로의 변화는 한국인들의 의식의 전면적인 변화와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한국인들은, 특히 경제인구의 중추에 있는 30, 40 그리고 50대의 사람들은 늘어나는 공휴일에 여가문화를 만끽할만한 능력이 있는 가?는 심각하게 문제시된다. 이들은 한
3. 하나님나라의 선취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험하는 장이므로, 인간의 목표는 ‘평화’라는 모든 사물의 새로운 질서를 선취함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통을 감소시키고, 상처를 치유하며, 사회적 보상을 감당해내는 봉사가 사랑 없는 유토피아가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나라에 대
“역사는 종말론적 기능을 가졌다” 이 문장은 에른스트 케제만에게서는 복음서에 나타나는 지상적 예수에 해당된다고 본다. 또한 그는 이것을 “케리그마의 테두리 안에서” 명확하게 해석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른스트 푹스가 강조했던 것 같이 케제만도 케리그마에서 역사적 예수에게로의
현대 신학의 이슈는 교회론이다. 구속사는 세속사의 중심이며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통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문제의 해결책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주신 것이다.
교회론의 연구방향
현대 신학의 관심은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교회의 본질보다는 ‘
한국 교회는 부흥과 쇠퇴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 교회는 유럽 교회와 미국 교회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 견해를 가진 한국 교인들이 많이 있다. 한국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유럽 교회가 걸었던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그 사회적 환경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특권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중보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이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나라의 임하심이
? 블룸하르트(Christoph Fr. Blumhardt, 1842-1919) 소개
1842년 독일 뫼트링겐에서 저명한 목사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1805-1880)의 아들로 태어나 독일 루터교회 목사로 서남부지역 받볼(Bad Boll)에서 일평생 교역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와 산업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현실 정치에 참여 하는 것이 하나님나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