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매체들마저도 속속들이 더 편하고 쉬운 기능으로 탈바꿈하는 시대의 도래는 사람들로 하여금 빠르고 신속한 세계에의 도입을 끝없이 유도하며 온 세계가 한 덩어리로 운동하게 하여 각자의 멋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유입된 문화들이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점차 잠식해 가고
전통 윤리를 되살려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한다. 그리고 심성 수양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을 위하여 학생들에게 四書와 명심보감 등을 읽을 것을 권장한다.
20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겉으로는 유교의 속박을 벗어난 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 뿌리 깊게 유교의 윤리를 강하게 요청하는 모순된
4. 실록의 보존
모든 기록이 그러하듯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기록을 하는 것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기록의 보존과 활용이다. 아무리 좋은 기록이 있다 한들 그것이 온전히 후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면, 그 기록의 존재 가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
문화권 국가들의 경제발전은 자본주의 발달에 있어 유교의 역할을 재조명할 필요성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위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각 국 지도자들의 언급도 그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과연 새롭게 부각된 유교의 어떤 측면들이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베버의 의견을 뒤집어 경제 발전에
1. 유학의 전래 / 수용
(1) 유학의 전래
유학이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졌는가 하는 문제는 그 정확한 시기는 확 실히 알 수 없으나 그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다.
(가) 은․주교체기설 : 이이를 비롯한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기자동래설(基子東來說) 중국 은(殷)나라 기자가 와서 단군조선에 이어 기
분석해보고, 논란이 되는 단어와 구절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이와 더불어「쌍화점」은 작품 생성 초기의 본래 의미가 후대의 관념과 사회적 통념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는 작품이므로 기존에 연구된「쌍화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고, 본 발표조의 생각을 피력해보
1.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
• 김시습의 저항적 생애
김시습(1435~ 1493)은 세종 17년 서울 교외에서 충순위(忠順衛)의 벼슬을 하던 가난한 문인(文人)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적인 아이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가 아직 돌도 되지 않았던 어느날, 이웃에 살고 있던 최치운(崔致雲)
그 반란」, 『고려시대의 연구』, 아세아문화사, 1980.
이나 일부 학자들은 묘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또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며 재야사학이나 학계의 다른 일부 학자들은 신채호의 사상을 옹호하고, 묘청의 난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입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학문이나 사상을 꼽으라면, 우리는 힘들지 않게 ‘유학’을 떠올릴 수 있다. 근대 이후 서양의 많은 가치들이 한국사회에 들어와 정착하였지만, 우리는 유독 ‘한국적’인 것을 생각할 때면, 자연스럽게 유학을 연상 하게 된다. 이는 실제로 현재의 유학이 우리에게
I. 들어가며
21세기를 들어서면서 또한 글로벌 시대에서 무한 경쟁체제에 들어서면서, 기업간의 생존에 대한 고민이 점점 치열해져 가고 있다. 사회 전체가 거시적인 수확 체감을 겪고 있는 오늘날 개개의 기업 역시 정상이윤을 얻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