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고분 - 고대사연구회
1. 서언
한국의 역사 연구는 문헌사료가 부족하여 역사상을 복원하는데 있어 당시대인들이 남긴 문화 유산인 고고자료에 많이 의지한다. 주지하다시피 고대로 올라갈수록 문헌사료, 나아가 고고자료는 더욱 부족하여서 역사 연구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고분시대의 후반인 6세기 초부터 7세기 중엽까지는 아스카(飛鳥)시대라고 해서 일본 역사의 무대는 규슈(九州)지방에서 긴기(近畿)지방으로 옮겨지며 쇼도쿠(聖德)태자 시절에는 체제와 면모를 갖춘 고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문명의 개화에 백제의 신세를 단단히 지게 된다.
백제부흥군을 지원한 왜 군단과 나당연합군과 싸운 전투
에서 패배한 후 한반도 남부의 경영을 포기했다고 주장하였다.
이 설은 일본고대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는 계기를 만들었으나, 고대에 임나지방을 지배했음에 변화가 없다거나 문헌고증상의 문제, 바다를 사이에 둔 연합왕조의 가능여부의
고분 문화는 그 문화 성격이 다른 문화이다. 아스카 문화는 고분 문화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불교문화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전혀 다른 이질 문화와의 연계성을 주장하는 논리적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 고대사 강의에서 보면 양시대의 연계 주장으로, 고분시대의 고분 축조나 아스카 시
고대사에 있어서 조선남부에 일본세력이 거점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임나일본부 설을 서술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에 복속되어 있었는데 반해 일본은 독립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근현대사 서술에 있어서도 일본이 한국에 미친 피해를 축소, 은폐 하고 있으며 양국 사이에서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