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문인들의 大元帝國下 의 세계 경험
원제국의 판도 속으로 칭기스칸과 그 후계자들이 공략했던 땅이 전부 포괄되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 이승휴(李承休, 1224~1300)가 “영토의 광대, 인민의 다중이 개벽 이래 견줄 데 없다”고 찬탄했던 그대로 공전절후의 대제국이 들
식과문명의식은 일국적 영역을 벗어나 확장될 수 있었으며, 이로부터 국제관계속에서 고려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두고 동인(東人)으로서의 자기의식이 선명하게 되었다고 하며 동인의식(東人意識)이라 한다. 임형택, 「고려말문인지식층의 동인의식과문명의식」,『목
의식과 한글 운동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한다.
2. 개인과 민족의 발견
1) 제6절 속죄양 의식의 대두
식민지 치하에서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차지하는 정신사적 위치는 그것이 보여주는 예언자적 기능과 종말사관의 가치에 있다. 이 예언자적 지성은 지식의 차원과는 별개인 정신이라는
의인화하여 계세징인(戒世懲人-세상 사람을 경계하고 징벌함)을 목표로 하는 문학 양식으로, 고려 후기에 발달한 설화와 소설의 과도기적 형태이다. '설화'가 특정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닌데 비해, '가전'은 설화의 형식에서 한 걸음 더 진보한 개인의 창작물로 소설에 한 발짝 더 접근한 것이기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