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공간적인 조형(造形)을 시 도한 점 등에서 크게 주목받았* . 시집으로 《와사등(瓦斯燈)》(1939) 《기항지(寄港地)》(1947)가 있 다. 6 ·25전쟁 후에는 실업계에 투신, 문단과는 거의 인연을 끊었으며, 제2시집 이후 10여 년 만에 문 단 고별 시집 《황혼가(黃昏歌)》(1969)를 출간했다.
** 김광균의
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를 따라 그 전체의 모습을 둘러 보게 되는 것이다. 이 ‘푸른 종소리’는 이 시에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감각적 심상이 잘 어우질 뿐만 아니라 정서환기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방황, 현대의 화려한 물질 문명이 가져다 주는 무질서와 황량함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 지성의 방황을 `와사등`을 소재로 그리고 있지만, 정작 김광균 자신도 이 작품의 시적 자아처럼 제 삶의 길을 찾지 못하고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 그저 무기력한 지성으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년대의 화가와 시인들」, 『김광균 전집』, 국학자료원, 2002, pp. 407-408
김광균은 1930년대 소공동 소재 낙랑다방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김기림으로부터 프랑스 시단과 화단의 동향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가 이미지즘을 문학에 경도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
모더니즘의 시인도 아니며, 전통적인 리듬의 바탕 위에 인간의 순수 감정과 우리말의 정교한 아름다움을 탐구한 정통 시인이다. 영랑의 시적 비전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관심보다 유미탐구에 있다. 초기 시에서 영랑은 ‘내 마름’, ‘소색이는’, ‘얄개’, ‘실비단 하늘’ 등 새로운 조어와 전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