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의 경향은 버클리와 흄으로 계승되어 영국 경험론의 트리오를 이루었다. 그들은 추상개념, 경험의 배후에 있는 실체개념, 인과율(因果律)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보였으며, 특히 흄은 추상관념을 비판하여 관념의 기원을 감각인상에서 찾음으로써 위의 경향을 극한으로까지 밀고 가서 칸트로
옮겨 갔다.
몽루이로 옮겨온 1758년 이후로 그는 저작에 전념하여 1761년 여름에는 "에밀(Emile)"과 "사회계약론(Du contract social)"을 완성하였다. 이 두 저작은 루소를 불멸을 사상가로 만들어 주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에게 심한 박해를 가져다 주었다. 위대한 사상은 언제나 현실의 변혁을 지양하고, 그
사회적 지위도 이름도 육체도 아닌 ‘생각하는 것’ 자체, 즉사유(思惟)의 존재일 뿐이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생각 한다’라는 자신의 힘만으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고 한‘이성의 독립선언’이었다.
-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정신)와 육체(물질)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미칠 수 있는 영역 내에 있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 있는 대상에 관한 문제부터 미리 연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사상이 광막한 존재의 대해 속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다는 듯이 함부로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로크 역시 데카르트
로크는 "의식"의 연속성을 통해 자아를 정의하려 한 최초의 철학자이다. 그는 또한 정신을 "빈 서판"(백지 상태, 즉 "타블라 라사")으로 간주하였는 데, 르네 데카르트나 기독교 철학과는 다르게 사람이 선천적 관념(본유 관념 또는 생득 관념)을 지니지 않고 태어난다고 주장하였다.
2. 로크의 생애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