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내세웠고, 민족적 민주주의의 이름아래 국가의 권력은 대통령 중심으로 사유화되었다. 박정희정권은 또한 삼선개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무장침투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국민들에게 위기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자주국방’, ‘자립경제’라는 민족주의 구호를
민족상 재단이사장이었던 김종필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는 박정희의 조카사위로서 5.16쿠데타를 함께 수행한 이후 한일회담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정치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또 한편으로는 ‘르네상스적 교양’을 자부하며 문화, 예술 분야의 인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등 일종의 예술
경제&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2차원의 영상에서 진행됐던 논의들을 3차원적 공간의 수준으로 한 단계 더 진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공간’에 대한 정확한 의미규정 혹은 의미한정이 이루어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둘째, 우리들은 역사를 통하여 삶의 지혜를 습득할 수 있다. 현재란 과거의 연속이며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듯이, 역사를 배움으로써 현재 우리가 당면하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미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박정희정권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1970년을 전후한 몇 년 간을 기점으로 하여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정권은 집권초기에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으로서 그 정통성의 취약점을 감추기 위해 외채 도입을 바탕으로 한 ‘경제제일주의’를 강력한 수단으로 삼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