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모든 외적들에 대하여 무자비한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바로 이러한 복잡하고 간고한 투쟁과정을 통하여 우리 민족은 한 걸음 한 걸음 공고 발전하여 나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십분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하여 발해에 대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게 된 것이다.
Ⅰ. 머리말
발해는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아스라이 떠오르는 옛 추억과 같은 것이면서도 무언가 잘 잡히지 않는 존재가 아닌가. 발해는 고구려 옛 장수였던 대조영이 세운 나라였고, 그것은 엄연히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배워왔으면서도, 사실은 우리에게 잊혀진 역사인 것이다. 그러나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大祚榮 : 고왕)도 그의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과 함께 요서 지방의 영주(營州)로 옮겼다. 당시 영주는 당이 북동방의 이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운영한 전략 도시였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말갈인·거란인 등 다수 민족이 집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당이
1. 문제제기
과거 오랫동안 우리의 역사로 인식되지 못했던 발해, 아직도 국제적으로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지, 말갈인의 나라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국제 역사가들의 논쟁일 뿐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
역사를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통째로 없앴고 중국 언론도 ‘고구려는 중국 지방정부’ 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으로 발해도 중국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며 발해사 왜곡을 대외적으로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서두르며 헤이룽 장성에 있는 발해의 옛 도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