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배우기 시작한 젊은이들이 문화 운동의 선도적 입장에 서고자 한 의도였다. 또 예술적 미를 추구함으로써 ‘강제구속’ 에서 벗어난 자유를 얻고자 했으며, 흐리터분하고 頹廢적 분위기인『폐허』 『창조』『백조』와 함께 우리 신문학 초창기에 있어서 중요한 문학사적 의미를 지니며, 그 당
낭만주의의 ‘폐허’속으로 빠져들었다. 처음의 의도와 목적이 잊혀지고, 자신과 현실을 저주하는 탄식이 문단을 뒤덮게 되었다.
우리 조선은 황량한 폐허 조선이요, 우리 시대는 비통한 번민의 시대였다,······이 퇴폐 속에는 우리들의 내적 외적 심적 물적의 모든 부족 결핍 결함 공허 불평불만
문학통사5』(지식산업사, 2005), p.133.
은 오상순에 대해 “다른 일은 버려두고 시인 노릇만 하면서, 고독과 우수에 시달리느라고 뚜렷하게 이룬 것이 없”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자세 없이, 설익은 관념에 머물러 시답지 않은 시를 긁적이며 일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1. 1920년대의 주요 시경향
Ⅰ. 1920년대 초기시의 성격
근대 자유시의 모색은 강렬한 반중세적 의식에서 출발하여 정론적 계몽성으로 주체의 전망을 설정하였다가, 일제강점 이후 소시민적 환상으로서 개인의 자기 발견과 자유를 형식화하려던 시도를 거쳐, 1920년대에 이르면 문학을 독립시키고자
Ⅰ. 서론
1920년대는 한국이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는 시기로, 한국현대시사에서 일제 강점기가 차지하는 의미는 심대하다. 우리 시문학사에 대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수많은 논의의 거의 전부가 이 시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음에도 아직도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