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大乘)’이라고 자칭하는 새로운 물결이 높아짐으로서 보수적인 상좌부의 그것과 현저한 대조ㆍ대립을 나타낸 역사적 사실은 불교사상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전환이었다.
대승(大乘, Mahāyāna)이란 말이 언제부터 생겼느냐에 대해서는 서지적(書誌的)으로 볼 때 기원전 1~2세기경으로 추정하
불교학 전반에 걸쳐서 뿐만 아니라 <<논어>>나 <<노자>> <<장자>> 등 유가서와 도가서에도 상당히 밝았음이 그의 저술에 나타나는 인용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고려 대각국사가 남긴 시에 의하면 원효는 의상과 함께, 고구려 고승으로서 백제 땅인 전주 고대산으로 옮겨 간 보덕화상의 강하에서 <<열반경>>
부르게 됨으로서 불교가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만일 인물로서 두 시기를 구별하는 표식을 삼는다면 자장은 통일 전 불교의 집대성자요 원효는 통일 후 불교 개척의 선구자라 할 수 있겠다.
고구려 불교사상의 주류는 반야공사상의 천명에 주력한 삼론종계통이었는데, 고구려 요동출
불교를 첨으로 빛나게 하였다는 의미이고 원효는 향언으로서 당시 사람들은 향언으로 새벽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요석공주와의 법연 이후로는 스스로 소성거사 또는 아래 하(下)자 마저 윗부분을 떼어버린 복(卜)자를 붙여 복성거사라고 불렀다 하며, 고선사 서당화상탑비에 의하면 원효의 별
대승불교에서는 아비달마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것에 상당하는 '논(論, stra)'이 4∼5세기 무렵부터 작성되었다.
이 시대의 사상적 특징은 主體 문제가 중심이 되고 있다. 불교는 無我를 說해 주체를 부정하는 듯한 교의적 표현을 지녔지만, 그것은 주체 문제를 소외시킨 것이 아니라, 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