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가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켜 나갔던 시대인 조선후기는 우리 회화사에 있어 가장 한국적 고유색을 발현했던 시대이다.
따라서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에 대한 고찰’ 이라는 명제 아래 겸재정선에 의해서 진경산수화가 기존의 틀을 머리고 어떻게 새롭게 변화되고 발전해 갔는가 하는 과정을 살
산수도>> 등에서 그 모습이 나타난다. 후기에 들어서 조선성리학이 확립되면서 조선 고유의 색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이때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조선화풍인 진경산수화풍을 확립한 겸재정선을 필두로 관아재 조영석, 현재 심사정은 진경산수화를 정립시켜나갔으며 첨재 강세황은 진경산수화를
겸재의 화풍은
많은 후배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겸재 일파를 형성하였으며, 민화의 금강산 그림에서도 그 잔영을 엿볼 수 있다.
③그의 진경산수화의 의의?
스스로 새로운 화법을 창출하여 그간의 병폐와 누습을 단번에 씻어버렸고, 그 결과 조선의 산수화법이 겸재에서 비로소 새롭게 출발하
산수화라 할 수 있으며, 진경산수화는 중국에서도 당나라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사상적 배경은 그 이전에 도연명의 자연주의에서 시작되었고, 당나라의 왕유와 곽희에 의해 산수화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중국 화론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의 화단에서도 자연히 그 영향을 받게 되어 겸재정선의
Ⅰ. 서론
산수화에는 `한`의 사상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진리관이 깃들어 있다. 고래로 한인들은 사물의 진리를 판단함에 있어 그 근본 중심을 부이성에 둔다. 이것은 한국인의 대물관에서 오는 시방식의 특성이다. 우리가 보는 산수는 주관 쪽에서 객관적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