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에 대한 주석의 연구를 참고하여 비판하고 새로운 해석을 가하기도 했으나 유교적 경전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후 지금까지도 시경에 대한 이해작업은 계속되어 오고 있다. 우리의 독창적 언어로 유교문화권에서 벗어난 현대적번역은 양주동의 노력으로 이루어 졌다. 그의 『시경』에
동의 실패와 여기서 연유된 민족적 좌절감에서 오는 경향이었다.
1920년대 시의 특징은 동인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문 문인 집단이 등장하여 문단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1910년대의 시를 계승하여 현대적인 의미의 자유시 형식을 확립, 발전시켰다. 그리고 서구의 여러 문예 사조가 도입되어 다양하
대한 인식을 사실적으로 하게 되었고, 진보적 사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본격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1990년대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예술적 전망이 불확실한 시기였다. 미래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불안감, 위기감, 허무감 등이 퇴폐나 죽음 등이 미학과 결합하는, 이른바 세기말적 상상력이 하
시의 장르적 속성과도 관계되는 일이겠으나, 아무튼 개화기의 시가 창작은 비전문적인 대중 참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여건에 의해서 개화기 시가의 창작계층에 대한 인식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화기의 역사임무와 시대 상황의 대응과 수용을
번역하여 발표하는 한편, 민요적인 가락의 시를 창작하였다. 주요한은 정형률에서 벗어난 ‘불놀이’를 발표하였다.
1920년대는 본격적인 근대시가 등장한 시기이다. <폐허>(1920), <장미촌>(1921), <백조>(1922), <금성>(1923) 등의 동인지가 나오면서 많은 시인들이 배출되었다. 3·1운동의 실패로 인해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