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넓어진 주둥이를 가진 편병의 출현 등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무늬에서는 전시대에 유행하던 상감무늬의 내용이 답습되나 점점 쇠락해지거나 생략되어 가며 조잡한 초화무늬가 전면에 시문되기도 한다. 또한 원의 영향을 받아 파도무늬, 용무늬, 물고기무늬, 쌍봉무늬 등이 등장한다.
백토, 백점토, 진흙, 자기토 등의 개괄적인 이름으로 붙인 것으로 유약을 입히지 않고 질, 즉 흙의 성질 그 자체가 중요 재료로서 그 흙을 구별하는데 보통 산지의 이름을 붙였다. 조선시대 질로 유명한 것은 광주수토, 양구백토, 진주백점토, 곤양 수을토 등이 있다.
토기를 만드는 방법(成形法)을 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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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절대연대를 알려주는 지표로서 국보로 지정됨
상감백자로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서 가치
야외용 술병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
조선은 스스로 백토를 찾아내어 백자를 만들었지만,
코발트의 수급은 원활하지 못함.
결국 조선 왕실에서는 청화백자 대신 상감백자 제작
청자의 종류 -
순청자(純靑磁) - 청자 일색의 무문·양각·음각·상형·투각문 등의 청자로서 상감이나 화문청자는 제외된다.
상감청자(象嵌靑磁) - 그릇이 마르기 전 무늬를 선각(線刻)하고 백토나 흑토로 메워 초벌구이 한 다음 유약을 바르고 구운 것인데 간혹 진사(辰砂=酸化銅)를 섞어서 밝은
却說司禮監王振, 因太皇太后旣崩, 遂得肆行無忌。
각설사례감왕진 인태황태후기붕 수득사행무기
각설하고 사례감 왕진은 태황태후가 이미 붕어해 곧 마음대로 해서 거리낌이 없었다.
先是太祖置鐵牌於宮門, 高約三尺, 上鑄“內官不得干預朝政”八字, 振竟將鐵牌?去。
선시태조치철패어궁문 고약
却說西蜀來一方士, 入見上皇, 自言姓楊名通幽, 法號鴻都道士, 有李少君術, (李少君系漢武時人。) 能致亡靈來會。
각설서촉래일방사 입현상황 자언성양명통유 법호홍도도사 유이소군술 이소군계한무시인
능치망령래회
각설하고 서촉에서 온 한 방사는 상황을 들어와 뵙고 스스로 성은 양씨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