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봉
유흥 모친인 풍첩여가 사망한 뒤에 유기자는 다행히 연좌되지 않아 여전히 왕으로 봉해졌다.
當下派車騎將軍王舜, 持節往迎。
당하파거기장군왕순 지절왕영
곧장 거기장군 왕순을 파견해 부절을 지니고 가 맞아들이게 했다.
舜係王音子, 爲莽從弟, 太皇太后素來愛舜, 故特使迎主立功。
왕봉상(王奉常)”이라고 불렀다.
49세 때 민남지역으로 파견되어 일하다 심한 과로로, 남경에 돌아온 후 학질에 걸리는데 그후 관직을 그만두고 태창 교외의 서전(西田, 명대 황실에서 왕시민의 조부 왕석작에서 하사한 땅)에서 은거 생활을 하며 예술 창작에 전념하여 많은 사(詞)와 서화 작품을 남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