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리를 입었으며,
일하는데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치마를 걷어 올려 묶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있다.
두루마기처럼 생겼다.
실제로 팔 양쪽 소매 부분이 있고,
쓰개치마는 말 그대로
치마형태라서 소매 부분이 없다.
양 옆으로 끈이 있습니다.
장옷도 깃 처리나 소매를 색을 넣어 대고
조선조 후기 풍속화의 태동은 17∼18세기의 기록화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꾸준히 제작되었던 궁중 제반사를 담은 의궤도(儀軌圖) 범주의 기록화와 양반 관료층의 아취와 시정을 드러낸 계회도(契會圖)인 등도 여기에 널리 포함시킬 수 있다. 야외에서 그려지던 각종 계
조선 중후기의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남종화법의 발전
1) 초기-윤두서
· 공재 윤두서 (恭齋 尹斗緖 1668~1715)
공재 윤두서는 1668년 태어난 조선 후기의 선비로서 169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조선시대역사에서 가장 당쟁이 치열했던 숙종 때의 문인으로서 남인계열의 윤선도가 그의 증조
3. 남종화법의 발전
1) 초기-윤두서
· 공재 윤두서 (恭齋 尹斗緖 1668~1715)
공재 윤두서는 1668년 태어난 조선 후기의 선비로서 169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조선시대역사에서 가장 당쟁이 치열했던 숙종 때의 문인으로서 남인계열의 윤선도가 그의 증조부이다. 노론이 집권한 조선 후기 내내 당쟁
영향을 미쳐 겸재 일파를 형성하였으며, 민화의 금강산 그림에서도 그 잔영을 엿볼 수 있다.
③그의 진경산수화의 의의?
스스로 새로운 화법을 창출하여 그간의 병폐와 누습을 단번에 씻어버렸고, 그 결과 조선의 산수화법이 겸재에서 비로소 새롭게 출발하였다고 평가되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