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공연 양식적 특성을 더욱 중요시해, 판소리의 선행 공연양식을 찾으려는 노력 속에서 제기된 것이다. 판놀음은 조선 후기에 전문적인 놀이꾼들이 돈을 받고 벌이던 놀이인데, 판소리는 바로 이 판놀음의 주요 구성 주체인 창우(倡優) 집단의 광대소리와 성음(聲音)·장단·조(調)·공연방식·공
체로 17세기 후반인 숙종 연간의 일로 추측한다. 물론 이 시기의 「춘향가」는 문학적 층위의 사설도 거칠었으며 음악적․연극적 층위에서도 세련되지 못한 소박한 형태였을 것이다.
3. 「춘향가」의 전승과정
춘향의 이야기가 어느 때부터 판소리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알 갈이 없으나, 영조 30
판소리의 가창방식과 판소리 자료들을 간략하게 개관해 보았다.
Ⅱ 판소리의 장르 규정
지금까지의 판소리의 장르규정은 ‘장르‘가 문학의 문제라는 점에 견인되어 문학적인 측면, 즉 辭說을 중심으로 한 문학적 분석에 치중하여 연구되어 왔다. 물론 음악적 측면과 연극적 측면의 연구가 없지
판소리의 어느 한 측면만 각각 주목하고 있어, '판'의 함의를 충분히 드러내 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판소리의 현장성과 음악성, 부분의 독자성 등을 고려할 때, '판'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뜻과 <판을 짠다>는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되며, 그렇게 보면 판소리는 <많은 사람이 모인
판소리를 전승시켜 온 것은 판소리 창자(唱者)이고, 그들은 전국에 두루 존재하였다. 그러나 무가의 선율이 육자배기 토리로 되었고 무가의 반주로 시나위가 연주되는 지역에서만 판소리 명창이 배출될 수 있었다는 점에 따라 판소리의 음악적 측면은 호남의 무악(巫樂)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