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굿에서 무당이 신격자로 분장하여 춤을 춘데서 찾을 수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고려 때의 연등회나 팔관회와 같은 축제에서 행한 '소학지희'가 조선시대의 산대가면놀이로 이어지면서 연희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금의 여러 탈춤에서 이러한 춤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는 궁중무용의 전성기로서 이때 만들어진 춤만도 36종이나 되며 조선 후기까지 추어진 정재는 총 55종에 잘한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시용향악정재에 의하면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봉래의(鳳來儀)〉〈아박무(牙拍舞)〉〈향발(響鈸)〉〈무고(舞鼓)〉
한국 춤계의 가장 큰 변화는 이 같은 일련의 흐름에 편승해 한국 춤 사회 곳곳에서의 지각변동이 그 어느 해보다 강하게 나타났다. 춤 사회 전체의 규모가 급속도로 팽창한 점, 국립발레단이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태동한 것을 비롯해 대표적인 직업무용단인 국립무용단이 소속한 국립극장의 책임운영
한국춤에 있어 집단성이나 또는 공동체성, 그리고 제의적인 면과 놀이성의 융합이라는 큰 줄기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부족국가시대 이후의 한국춤은 이른바 국가제도가 점차 조직화되고 확립됨에 따라 궁중춤과 민속춤으로 확연히 구분되게 된다. 궁중춤은 국가제도
민속무용으로 대분할 수 있는데, 왕실 중심의 궁중무용은 대부분 인접해 있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된 외래무용을 소화시키거나 또는 왕실 자체 내에서 창작된 무용이었으며, 민간에서 전승된 것은 아득히 먼 부족국가 시대에 발생한 민족적인 것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1.한국무용의 기원
상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