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주자학(성리학)의 흐름
중국의 성리학에 한국에 도입된 것은 주자 사후 100여년이 지나서 원나라로부터 이루어 졌다. 安珦이 도입한 성리학은 백이정, 우탁, 이제현, 이인복 등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나, 충분히 소화되어 토착화하기 시작한 것은 牧隱 李穡에 이르러서였다. 목은 이색에 의하여 수용
Ⅰ. 序論
現代社會에서 法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이 크다. 法治主義 또는 法의 支配로 상징되는 近代國家에서 法은 국가권력을 제한하여 국민의 自由와 權利를 보장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더구나 현대에 이르러서 法은 적극적으로 社會福利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떠맡고 있다. 그런
求 赦(deprecatio) 가장 明證度가 낮은 변호로, 행위자의 不法한 의도(mala voluntas, malus animus)까지도 시인하되, ㉮ 행위자와 관련해서는 (i) 그의 (과거 또는 장래의) 흠잡을 데 없는 삶과 功을 고려해서 (ii) 혹은 피고인은 이미 현재의 訴追狀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는바, 이것은 補贖으로 볼 수 있으므로, (iii
論)〉(1642, 1647) 등 3부로 나누어졌는데 베이컨 학설보다 더 체계적으로 구축되었다. 제1부 〈물체론〉에서 그는 자연학(自然學)을 철학의 기초에 두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인(形相因)·목적인(目的因)을 버리고 전실재(全實在)를 물체와 그 운동이라는 동력인(動力因)만으로 설명하려는 유물론, 즉
王政 在於先知民數 目今役煩民散 勢將空虛
라 하여 백성들의 逃散으로 장차 나라가 텅 비게 되었다고 우려하며 시급한 민인파악을 건의하였다. 호패제 시행 논의는 宣祖代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와 함께 私賤革罷論과, 호적 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민인파악을 위한 여러 논의가 있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