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아동은 자라는 동안 학업에 대한 부담이 없이 자유롭게 성장하고 자연과 친하여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부모들이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루소의 교육사상이 현 사회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17세기 말 내지 18세기 초의 프랑스에서는 자유사상이 존중되었다. 이 시대의 경향
루소에게 교육은 인간이 지닌 본래적인 내면의 감정으로서의 자유로운 감정을 인간의 내면에 고취시켜주고 그것을 진정하게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루소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성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고 또 그것을 실현하려 하였다. 이제 「에밀」에 대한 전체적인 개괄과 루소의 교육사상
교육론을 쓴 사람이 어떻게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것은 루소를 불신하는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그런 실패와 쓰라린 경험의 결과로 「에밀」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에밀」에 대한 전체적인 개괄과 루소의 교육사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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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존재하기 이전의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는 교육에 있어서 아동중심·아동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아동중심에 대한 이해의 발판을 다진 사상 중 하나가 루소의 교육사상이다. 본 연구는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을
교육철학연구회 편(1996), 『위대한 교육사상가들Ⅱ』, 서울: 교육과학사, p. 192.
16살이 되던 1728년 그는 제네바 성을 떠나 방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적 정서적 발달에 큰 영향을 준 12살 연상의 바랑 부인을 만나 어머니요 애인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 30살이 되던 1741년 루소는 파리로 떠나 디드로(D
사상은 인간을 무지로부터 해방시켜 지각된 개인과 이성 및 지성존중의 정신을 전제로 하는 합리주의적·주지주의적·개인주의적인 사상이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을 본분으로 한 계몽운동은 그 자체가 하나의 교육운동이었다. 계몽사상가등은 인간은 교육에 의해 개명될 수 있고, 개명
루소는 손재주가 좋은 시계공이었으며, 프랑스인의 독특한 기질인 감정이 풍부하고 호탕하며 고집이 센 성격의 소유자였다. 감성적이고 여성적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루소 성격 역시 여성적이고 수동적이 된다. 아버지는 괴팍하고 방랑적인 성격으로 아들을 교육하였으나 함께 책 읽는 기회를 많이 가
루소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완전히 독학으로 교양을 쌓았다. 1742년 8월(30세), 아직 사상가로서의 사명을 자각하지 못했던 루소는 파리에 도착하여〈음보(音譜)의 새로운 기호에 관한 제안〉을 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점차 음악가 루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는 1742~4년(31세)
Ⅰ. 서 론
루소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태어났으나 여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철학자이자 교육사상가였다. 그의 교육사상은 자연주의 또는 낭만주의 교육사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루소는 자연은 우주 만물의 근원이면서 본질이다. 따라서 자연에 부합되는 모든 일이 바로 선이며 가치이다
이성의 힘을 믿고 이성을 모든 것을 판단하는 최고의 원리로 삼는 계몽주의에서는 역사적 전통이나 민족적 관습마저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국가와 사회의 운영원리 속에 숨어 있는 비합리적, 정의적 측면들은 앙상 레짐이라 하여 가차 없이 공격하였다. 여기서 계몽사상의 반역사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