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루쉰의 생애
1881년 중국 남방의 절강성 소흥부라는 소도시에서 출생하였다. 집안은 당시 소흥에서 명문에 속하는 사대부 집안이었다, 조부는 북경에서 한림원 관리로 있었으며, 부친 역시 수재에 급제한 선비였고, 만여 평 가량의 논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가산 또한 풍족했다.
그러나 13세 되던 해에
중국 바깥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작가라고 하면 중국 내에서도 20세기 내내 중국 문학의 강력한 중심으로 작용해온 루쉰이라고 할 수 있다. 루쉰은 뛰어난 문학가이자, 위대한 사상가, 교육자로서도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다. 루쉰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살다간 고뇌의
내가 루쉰의 이름을 제일 처음 들어본 것은 1년 전 중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이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에는 중어중문학과의 한국 유학생이 많았다. 유학기간 중 방학 때 나는 유학생활에서 만난 친구들과 상해로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방문한 루쉰 박물관과 루쉰 공원에서
Ⅰ. 루쉰의 생애와 작품
루쉰 (1881.9.25-1936.10.19)
1. 출생과 일본 유학, 문학가가 되다
루쉰은 1881년 9월 25일(음력 8월 3일), 중국 저장(浙江)성 사오싱(紹興)에서 태어났다. ‘루쉰’(魯迅)은 그의 필명이었으며, 원래 성은 저우(周)씨였고, 어린 시절의 이름은 장서우(樟壽)였다. 본명으로 알려진 수런(
Ⅰ 루쉰의 생애와 작품
1923년 소설집 <눌함 (呐喊)>
1918-1922 집필
<광인일기>, <아Q정전>, <약>, <고향> 등 수록
1919년 중국 ‘5•4 운동’
항일 시위인 동시에 고전문화에 대한 반성과
신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문화운동.
전통문화가 병들어 있는 중국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1. 루쉰의 마르크스주의 학습
1) 친지의 회상과 루쉰의 견해
· 쉬광핑의 회상 : 마르크스 독본을 텍스트로 사용할 정도로 이해가 뛰어났다.
· 루쉰 : 창조사와 태양사가 공격을 해왔는데 그 힘이 빈약해 나마저 시시해져서 반격할 마음이 나지않았다. 나는 마르크스주의 비평의 사격법을 터득한 사람
(1)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아침꽃을 저녁에 줍는다. 루쉰은 어째서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고자했던 것일까. 나름대로 생각해보다 봄을 맞아 만발한 벚꽃들을 보면서 ‘여유와 되새김’이라는 의미를 덧붙여보았다.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도 아름답지만 떨어져 흩날리는 꽃잎은 더욱 아름답다.
광인일기를 통해본 루쉰의 세계관
-노예근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하고 중국을 공허한 영웅주의의 이면에 패배주의, 민족적 위기 앞에서도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허망한 자존심만 앞세운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신 혹은 자기민족에 대해 마이너스적인 면을 집약적으로 표출한다는 것은 작가
1.魯迅
루쉰 [魯迅(노신), 1881.9.25~1936.10.19]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본명 저우수런[周樹人].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 출생.
1918년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하며 문학가로
등단함. 이후 중국의 현실에 대해 실랄한 비판을 통해 중국의 탈
봉건주의 와 근대화를 위해
루쉰(魯迅)은 1881년 9월 25일, 중국 남방의 절강성(浙江省) 소흥부(紹興府)에서 태어났다. 소흥은 전국 시대 월(越)나라 도읍이었으며, 전당강(錢塘江) 남쪽 기슭의 평야 지대에 자리잡은 소도시이다. 루쉰의 아명은 짱서우(樟壽)였고 자(字)는 위샨(豫山)이라 했다가 후에 위차이(豫才)로 바꾸었다. 본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