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마한 사회의 지배 세력
마한의 정치적 성격을 생각할 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마한을 구성한 기본단위는 소국이었다는 점이다. 이 소국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립 시기나 성립주체를 달리 하면서 각처에 산재하여 있었고 이들은 맹주세력을 중심으로 연맹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마한
우리나라 역사의 기록에서 맨 처음으로 나타나는 이지역의 이름은 마한(馬韓)이다. 이 마한은 진한(辰韓), 변한(弁韓)과 함께 삼한시대를 이루었는데 대체로 기원전 일․이천 년 무렵에 본격적인 부족국가의 형태로 그 통치 체제가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삼한은 북쪽의 고조선과는 한강을
Ⅰ. 신화와 신라건국신화
신라의 화백은 政事堂政治와 南堂政治 시대를 지나 5세기경 업무량의 폭증과 체제의 정비를 위해 대등정치를 실시하면서 시작된 정치적인 의사결정 기관 또는 제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화백제도의 뿌리는 부족연맹체시대의 씨족 또는 족장회의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
Ⅰ. 고구려건국신화
한국의 건국신화는 삼국유사를 비롯한 문헌에 전해지지만, 그에 해당되는 제의적 양상이 전하지 않고, 반대로 국중대회 등은 국가적 제전이었으면서도 거기에서 연행 또는 영창 되었을 신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제의와 신화의 상관물적 관계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한강유역으로부터 중남부지방에 걸쳐 형성되어 있었던 여러 부족에 대한 통칭.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을 말한다. 삼한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마한은 한강유역으로부터 충청·전라도에 걸쳐 있었으며, 진한은 경기·강원도 일부,
마한 잔여세력으로 보는 견해, 왜와 관계를 가진 세력으로 보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을 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이들 견해들이 영산강유역 고대사회 그 자체의 실체를 해명하려는 것 보다는 백제와 마한과 혹은 왜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객체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1. 삼한의 성립
남만주 지역에서 예맥족이 청동기 문화를 누리던 때보다 다소 늦게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는 한족(韓族)이 청동기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청동기문화는 BC 10세기께 중국의 동북지역을 비롯하여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상
Ⅰ. 광주(광주광역시)의 연혁
1. 마한시대
광주지방에 사람이 살았다고 믿어지는 시기는 마한시대로 추측된다고 한다. 위지동이부한숙에 의하면 마한의 지역 중 광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구사조단국과 불이지국을 들 수 있는데 구사조단국은장성군 진원면 일대로, 불이지국은 나부일대로 보고
마한, 진한, 변한 등이 있었으며 이후 이들의 후예에 의해 세워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있었다.
기원전후의 한반도와 그 북부의 언어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가 있다.
부여 - 고구려 - 옥저 - 예를 한 묶음으로 하는 夫餘系 言語와 마한 - 변한 - 진한을 한 묶음으로 하는 韓系 言語, 그리고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