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제 등이 있으나 관습적인 제사에서는 기제와 절제가 중시되었다.
조선시대 중반 이후가 되면 임진란, 정유란 등을 거치며 제사관념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는데, 특히 기독교의 도입과 서구문물의 생활양식이 보급되면서 제사를 미신으로 배척하는 풍조가 생겼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화로 조선왕조
묘제, 절사에 한하고 있다. 그것도 기제의 경우 조부모, 부모의 2대 봉사를 원칙으로하고 제사 시간도 기일, 일몰 후에 지내고 있으니 모든 것이 간편 위주로 변해 가고 있다. 또한 기제에서 고위의 제사 때는 고위만 지내고 비위의 제사 때는 비위만 지내는 것이 옳다는 설도 있고 고위와 비위를 같이 지
우리나라에 제사가 언제부터 조상 숭배의 의식으로 구체적인 틀을 잡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씨족사회 때부터 조상의 영혼 섬김으로 후손의 번성을 기원하고,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 행해졌던 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교 문화와 더불어 전래된<주자가례>에 의해서 제례의 형식으로 정형화
Ⅰ. 제례(제사예절)의 개념
예서(禮書)에 의하면 "제왕(帝王)은 하늘을 제사 지내고 제후(諸侯)는 산천을 제사 지내며, 사대부(士大夫)는 조상을 제사 지낸다"고 했다. 이것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에게는 천지(天地)가 절대자이고, 한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에게는 산천(山川)이 절대자이며, 그렇지
묘제(墓祭) 등의 조상 숭배 의례를 지켰다.
< 제례의 종류 >
(1) 사당제(祠堂祭) : 사당이란 조상의 신주(영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평민들은 사당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제사만 올리게 하였고, 사대부들만 사당을 세웠으며 사당을 가묘(家廟)라 했다. 사당에는 대부분 목제 신주나
묘제(墓祭)
안동에서는 묘제를 흔히 시제 또는 시사라고 부른다. 안동대 민속학연구소편, 『안동양반의 생활문화』, 영남사, 2000, 320쪽.
시제는 원래 4대조까지의 조상에게 매 계절의 가운데 달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지만 안동에서는 묘제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묘제는 원래 5대조 이상의 조상
묘제(墓祭)>다. 사실 묘제는 제사 종류라기보다 엄밀히 말해 제장을 일컫는 셈이지만, 대상만 주어진다면 구분 못할 성격도 아니라고 본다. 그러다보니 문제는 묘제에서 과연 어떤 조상을 향사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데 현대에서의 이러한 여러 졔례들을 지키기엔 아무래도
)·녜제(?祭)·기일제(忌日祭)·묘제(墓祭)와 같은 여섯 가지 제사를 지냈다. 나머지 제사는 몰라도 조상과 관련된 제사는 신분에 따라 할 수 있는 범위가 달랐다. 당시 대부이상 관원은 고조까지 4대를 제사를 지내고 6품 이하는 3대 제사를, 7품 이하의 하급관원과 서민은 부모제사만 지낼 수 있었다.
묘제(墓祭), 절사(節祀)에 한하고 있다. 기제의 경우 조부모와 부모의 2대 봉사를 원칙으로 하고 제사 시간도 기일 일몰후에 지내고 있으니 모든 것이 간편 위주로 변해가고 있다.
▷ 기제에서 고위의 제사 때는 고위만 지내고 비위의 제사때는 비위만 지내는 것이 옳다는 설도 있고, 고위와 비위를 같이
묘제의(墓祭儀)·상복중행제의(喪服中行祭儀) 등을 첨부하였다. 조선 중기(中期) 이후의 교과서로 널리 쓰여졌기 때문에, 활자를 비롯해서 목판본이 여러 차례에 걸쳐 출판되었다. 이 장에서는 교육고전의이해4공통) 『교육고전의 이해』 교재에 소개된 공자, 지눌, 이황, 이이-격몽요결-의 저서 중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