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송서(宋書)
중국 남북조시대 남송(420~479)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송서에는 5세기에 남송에 조공을 바친 왜의 5왕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무왕(武王)이 스스로 왜․백제․신라․임나․가라(가야)․진한․모한 등 7국의 왕을 칭하면서 남송의 황제에게 이를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자
Ⅰ 서론.
최근 일본의 독도가 자신이 땅이라 우기기에 반대하여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광고를 하는 등 여전히 독도를 둘러싸고 분쟁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 왜곡은 비단 독도 문제 한 가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국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고대 한반
宋書는 인물의 관력을 열거하는데 에 주력하여 무미건조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宋書가 속성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그 사료를 熟成(숙성)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중 列傳에서는 집필당시 현존해 있던 자손 때문에 특정인물의 惡事(악사)가 은폐되기도 했다.
『夷蠻列傳(이만열전)』은 宋書(송서)
宋書는 인물의 관력을 열거하는데 에 주력하여 무미건조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宋書가 속성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그 사료를 熟成(숙성)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중 列傳에서는 집필당시 현존해 있던 자손 때문에 특정인물의 惡事(악사)가 은폐되기도 했다.
『夷蠻列傳(이만열전)』은 宋書(송서)
송서(宋書)』 『송서(宋書)』는 송(宋 : 420~479년)이 멸망한 뒤 9년 만에 편찬되었다. 중국 남조의 제(齊)나라 때 심약(沈約 : 441~513년)이 488년에 기록한 역사서로 중국 남부 지방에 자리 잡고 있던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했다.
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 리에
송서(宋書) 』
. 칠지도
『일본서기』 일본에서도 문제점 지적
「광개토대왕비문 」 왜가 고구려나 신라와 싸우는 내용
『삼국사기』 대부분 왜가 단순히 신라를 침입하는 내용만 기록
『송서』 왜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군사권의 자칭과 승인 뿐
전남 순천 운평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계 토기
.
송서(宋書)》 《제기(齊記)》 《송세문장지(宋世文章志)》 등 저술이 많았으나 《송서》만 전해지고 있다. 100권이나 되는 문집도 현재는 《한위육조 일백삼가집(漢魏六朝一百三家集)》에 실린 《심은후집(沈隱侯集)》(2권) 《한위육조명가집(漢魏六朝名家集)》에 수록된 《심휴문집(沈休文集)》(9권)
송서(宋書)』: 중국 남조 송(宋)의 정사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천 리에 있었다. 후에 고구려는 요동을 침략하고 백제는 요서를 경략해서 차지하였다.
백제가 다스린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百濟國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經略有遼東 百濟經略遼西
百濟所治謂
송서(宋書) 왜국전>에 언급된 왜에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시기에 대해 추정해보고자 한다.
Ⅱ. 일본 문자의 전래
“삼국의 문화는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 고대 문화 성립과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삼국 중에서 일본과 가까웠던 백제가 삼국 문화의 일본 전수에 가장
송서(宋書)에 등장하고 있는데 일본은 이를 근거로 하여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주장하고 있다.
2. 고지키(古事記)와 니혼쇼키(日本書紀)
日本書紀는 720년에 편찬된 일본 최초의 관찬 역사서이며 이미 8년전인 712년에 겐메이(元明)천황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古事記와 더불어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역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