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최남선 ∙ 이은상 ∙ 이병기
4.1. 최남선 <백팔번뇌>(百八煩惱), 1926년
최남선은 <조선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조선문단.1926. 5)에서 조선심을 운율로 표현한 양식이 시조이며 민족정신을 되살리려면 시조를 부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고 있는 시조부흥은 '조선적인 것'의 시적 형
1) 카프문학
① 신(新)경향파 문학
우리 시단에 현실주의적 문예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초반부터이다. 3.1 운동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현실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문학도 민족의 모순을 타개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됨에 따라 이러한
운동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발견하였으며, 민족의 정서를 민족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동인지 형식의 문예지를 발간하거나 문단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집단을 형성하면서 그 노력을 하였다. 김억은 백대진, 황석우 등과 함께 《태서문예신보》의 창간과 때를 같
시조부흥운동은 국민문학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범문단적인 현상이었다. 또한 한시의 변형을 통해 민족형식의 수용도 개진되었다. 고 『한국근대문학의 전통론사』에서는 말하고 있다.
2.1920년대~1930년대 초 시의 흐름
1)낭만시 - 낭만주의 시
(1)낭만시의 등장: 1920년대 초, 동인지를 통해 대거 등
계기로 하 여 조직적인 계급문화운동이 전개되었다.
(5) 카프(KAPF)의 경향에 반발하여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조선심(朝鮮心)’, ‘조선혼(朝鮮 魂)’을 강조한 ‘국민문학파(國民文學派)’가 형성되었으며, 이들은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시조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운동의 주체로 보는 사상이다. 인민대중은 온갖 예속을 벗어나 사회를 개조 발전 시켜 나가려는 사회 계급적 본성을 갖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민대중의 이러한 자주적 요구와 지향은 집단적인 힘으로 발휘되며 이를 통해 실현될 것이다. 인민대중은 자신의 역할을 자각해야 했다. 그런데 인민대중은 역
Ⅰ. 들어가며
‘고전’은 1930년대 후반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자 화두였다. 대체로 역사적 혼란기일수록 전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 1920년대의 시조부흥운동 이후 고전이 다시 한번 집중 조명 속에 논의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계기를 맞은 것이다. 이는 우리의 고유한 정서나 감정, 나아
시조인 대조영의 출신문제에 집중해 왔다. 이 문제가 바로 발해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는 핵심주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발해의 건국과정과 건국집단의 세력을 살펴보며 우리역사에서 발해 의 위치와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Ⅱ.고구려의 멸망과 부흥운동
668년 나당
시조창으로 성립된 것이다.
이처럼 시조는 음악으로서의 주된 구실을 하였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위치가 변화하게 된다. 즉 양악이 번창하고 자유시가 한국 시단을 풍미할 때 일어난 시조부흥운동을 계기로 음악적인 요소와는 달리 문학사적인 위치를 정립하게 된다. 최남선은 시조부흥운동
한국 현대시의 흐름
1.자유시의 형성기(1910∼1919)
1910년대는 서구시의 도입과 더불어 현대 자유시가 형성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육당 최남선의 <해 에게서 소년에게>서 출발한 신체시는 완전한 자유시라 할 수 없다. 이러한 신체시의 문제점을 극복한 시인은 1910년대 등장한 김억, 주요한, 황석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