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들은 고구려사, 발해사, 조선사 등 한국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옌볜대에서 2001년 발표된 논문 ‘한민족공동체와 중국 조선족사회’에 따르면 조선족학교를 다니더라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12년 동안 (조선)민족사에 대해 공부하는 분량은 2.5페이지 1000여자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이
조선족들 역시 크게 자신들이 딱히 한국의 한 핏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3년을 북경에서 보내고 이런저런 조선족들을 봐 오면서 나 역시 이젠 그저 조선족이 한국말 할 줄 아는, 김치와 고추장을 먹을 줄 아는 중국인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학교 선배로부터
학교를 설립했으며 그 숫자가 1926년의 통계를 볼 때에는 자그마치 191개가 된다고 한다.
1931년 9.18 사변이 일어난 뒤에 중국의 동북쪽의 지방은 완전히 일본의 주도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1932년, 만주국을 건립하여 중국인들은 물론, 조선족들도 억압하기 시작하였다.
이
조선족 사회에 초래할 혼란을 사전에 막기 위한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은 조선족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며, 조선족들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더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넘어오는 사태가 빚어지자, 중국은
학교 입학을 하거나 전학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주근로자 자녀들을 입국 후 한 달 이상 장기간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부모들이 생계유지에 바빠서 자녀교육을 돌볼 여유가 없고 때로는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담당하게 하여 학교 입학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