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봉 ( Kim Gi-bong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2020] 제144권 226~255페이지(총30페이지)
본 논문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빅히스토리 모델을 찾아보려는 목적을 가진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창과 방패의 모순(矛盾)의 변증법으로 고도화 되며, 점점 더 큰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 과학은 바이러스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진화를 돕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발생했으며, 그런 모순의 변증법으로부터 인류의 문명은 어디를 향해 나가고 있는가?
2014년 미국의 역사가 조 굴디와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빅퀘스천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은 단기주의로부터 벗어나 장기지속으로 회귀하고 미래 전망을 해야 한다는 ‘역사학 선언’을 했다. 인류 역사에 대한 빅퀘스천을 갖고 빅뱅부터 ...
본 논문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빅히스토리 모델을 찾아보려는 목적을 가진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창과 방패의 모순(矛盾)의 변증법으로 고도화 되며, 점점 더 큰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 과학은 바이러스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진화를 돕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발생했으며, 그런 모순의 변증법으로부터 인류의 문명은 어디를 향해 나가고 있는가?
2014년 미국의 역사가 조 굴디와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빅퀘스천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은 단기주의로부터 벗어나 장기지속으로 회귀하고 미래 전망을 해야 한다는 ‘역사학 선언’을 했다. 인류 역사에 대한 빅퀘스천을 갖고 빅뱅부터 ...
본 논문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빅히스토리 모델을 찾아보려는 목적을 가진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창과 방패의 모순(矛盾)의 변증법으로 고도화 되며, 점점 더 큰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 과학은 바이러스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진화를 돕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발생했으며, 그런 모순의 변증법으로부터 인류의 문명은 어디를 향해 나가고 있는가?
2014년 미국의 역사가 조 굴디와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빅퀘스천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은 단기주의로부터 벗어나 장기지속으로 회귀하고 미래 전망을 해야 한다는 ‘역사학 선언’을 했다. 인류 역사에 대한 빅퀘스천을 갖고 빅뱅부터 ...
본 논문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빅히스토리 모델을 찾아보려는 목적을 가진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창과 방패의 모순(矛盾)의 변증법으로 고도화 되며, 점점 더 큰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 과학은 바이러스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진화를 돕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발생했으며, 그런 모순의 변증법으로부터 인류의 문명은 어디를 향해 나가고 있는가?
2014년 미국의 역사가 조 굴디와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빅퀘스천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은 단기주의로부터 벗어나 장기지속으로 회귀하고 미래 전망을 해야 한다는 ‘역사학 선언’을 했다. 인류 역사에 대한 빅퀘스천을 갖고 빅뱅부터 ...
본 논문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빅히스토리 모델을 찾아보려는 목적을 가진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창과 방패의 모순(矛盾)의 변증법으로 고도화 되며, 점점 더 큰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 과학은 바이러스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진화를 돕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발생했으며, 그런 모순의 변증법으로부터 인류의 문명은 어디를 향해 나가고 있는가?
2014년 미국의 역사가 조 굴디와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빅퀘스천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은 단기주의로부터 벗어나 장기지속으로 회귀하고 미래 전망을 해야 한다는 ‘역사학 선언’을 했다. 인류 역사에 대한 빅퀘스천을 갖고 빅뱅부터 ...
본 논문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빅히스토리 모델을 찾아보려는 목적을 가진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창과 방패의 모순(矛盾)의 변증법으로 고도화 되며, 점점 더 큰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 과학은 바이러스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진화를 돕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발생했으며, 그런 모순의 변증법으로부터 인류의 문명은 어디를 향해 나가고 있는가?
2014년 미국의 역사가 조 굴디와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빅퀘스천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은 단기주의로부터 벗어나 장기지속으로 회귀하고 미래 전망을 해야 한다는 ‘역사학 선언’을 했다. 인류 역사에 대한 빅퀘스천을 갖고 빅뱅부터 ...
공혜정 ( Kong Hye-jung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2019] 제143권 13~46페이지(총34페이지)
본 연구는 미국의 인권의료위원회(Medical Committee for Human Rights, MCHR)에 참여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의료인(의사, 간호사 등)들이 1964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의 ‘미시시피 여름프로젝트(Mississippi Summer Project)’, 즉 ‘자유여름(Freedom Summer)’에 참여한 이야기이다. 본 연구는 MCHR 참여자들의 구술기록, 신문기록, 민권운동 관련 기록들을 기반으로 기존의 민권운동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의료인들의 정치 사회적 공동체 의식을 고찰하고, 당시 미국 사회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시하고자 한다. 흑-백 인종 간 차별적 분리가 만연했던 1960년대 남부에서 흑인들은 의료인, 의료시설, 의약품의 부족을 경험하였다...
박정규 ( Park Jeong-kyu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2019] 제143권 47~78페이지(총32페이지)
이 글은 잉글랜드 국교회 내 온건파인 광교파(Latitudinarians)의 정치사상, 특히 세속권력자의 권위와 그 역할에 대한 견해를 계시적 정치 수사인 ‘신성한 군주(godly ruler)’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한다. 최근 학자들은 광교파의 정치사상이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정치이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그것은 광교파의 정치사상의 핵심 전제가 홉스주의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광교파의 정치관은 당시 교회의 독립적 권위를 내세운 국교도 내 ‘고교회파(High-church)’ 성향의 성직자들 및 비국교도들에게 ‘홉스주의’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다. 고교회파 국교도와 비국교도는 서로 상반된 종교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광교파가 홉스주의적 절대왕권론을 내세우고 있다는 ...
반기현 ( Ban Kee-hyun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2019] 제143권 79~103페이지(총25페이지)
이 논문은 서기 1세기 중반 이집트 속주에서 군단병 복무 후 제대한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니게르(Lucius Pompeius Niger)라는 인물의 정체성에 주목한다. 폼페이우스의 삶은 옥시린쿠스에서 발굴된 파피루스 문서들 가운데 현재까지 총 16개의 문서들, 즉 ‘폼페이우스 니게르 아카이브(Pompeius Niger archive)’가 전하는 내용들을 토대로 재구성이 가능하다. 옥시린쿠스(Oxyrhynchus/el-Bahnasa)에서 조일로스 (Zoilos/Ζωΐλος)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던 이 청년은 서기 20년경 로마군에 입대해서 로마식 이름(tria nomina)을 받았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니게르가 되어 티베리우스(14-37)-가이우스(37-41)-클라우디우스(41-54) 시기를 거쳐 군복무를 했고, 44년에 알...
김민철 ( Kim Min-chul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2019] 제143권 104~132페이지(총29페이지)
프랑스혁명 이전 수 세기 동안 유럽에서 대규모 징집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혁명 초기까지도 “폭정의 도구”로 간주되었지만, 혁명가들의 기대와 달리 자원병 제도로는 프랑스군의 병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자 1793년 2월의 “30만 동원령”과 8월의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1793년의 총동원령은 기실 일회성 동원령이며 법 제도로서의 국민개병제라 할 수 없다. 오히려 프랑스에서 국민개병제를 처음 제도화한 것은 흔히 “주르당 법” 또는 “주르당과 델브렐의 법”이라 불리는 1798년의 모집령이었다.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치른 신생 공화국의 군대는 1798년의 국민징집 법제화와 그것을 강제하기 위한 집요한 행정적 노력 덕분에 겨우 전투력을 충원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프랑스 군대는 19세기를 지나면서 ‘시민군’으로서 상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