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5편은 순수한 향토색을 지닌 우수한 창작품이다. 또한, (악학궤범) , (악장가사)와 같은 가집을 편찬하여 구전되어오던 작품을 정착시켰으며, 고려 시대에 발생했던 시조 문학은 조선조에 들어와 더욱 활기를 띠어 가사와 더불어 조선 시가 문학의 대표적 장르가 되었다.
사설시조는 내용과 형식의 파격성과 자유분방함 때문에 서민문학의 하나로써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사설시조의 발생시기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을 보자면 고려 중엽부터 영정조 시대에 이르는 시간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담당층 문제에 있어서 평민 내지 중인층이라는 견해부터 시작하여 양반
고려가요의 범주로 넣기에 모호한 면이 있다.
고려가요를 좁은 뜻으로는 속요만을 말한다. 민요에 기반을 두고 있어 소박하고 곡진한 감정을 담고 있는 서정적 성격의 속요와 신흥대사부들의 새로운 세계관을 특정 형식에 담은 교술적 성격의 경기체가는 향유계층의 이념과 역사적 성격, 표현기법에
Ⅰ. 가사(가사문학, 가사작품)의 발생
가사의 발생에 관해서는 조윤제가 말한 조선 성종 때의 정극인이 지은 <상춘곡>을 그 첫 작품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병기는 고려말기에 신득청의 <역대전리가>와 나옹화상의 <서왕가>등이 지어져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는 사실을 밝혔다. 특히 시조의 발생
계층 간 사회이동(social mobility)이 둔화되는 경향이 있고, 빈곤 탈출의 의지가 강했던 ‘희망의 빈곤’에서 그 의식이 점점 약화되는 ‘절망의 빈곤’으로의 이행 조짐이 보인다.
셋째, 도시민의 대다수가 가난했었던 1960~70년대의 빈곤을 ‘보편적 빈곤’, ‘일과성 빈곤’이라 본다면, 오늘날은 특정한
세기에 이르면 딸을 출가외인시하는 부계직계가족 형태가 확립되었고, 중기 이후에는 사대부 중심의 제도가 일반인들의 풍속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모든 계층의 여성이 이 제도 속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관계는 소유적(물질적) 관계로 규정되기보다 사회윤리의 기본
고려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보편화되는 것이다. 이 당시 장르와 장르적 특성을 살펴보면, 향유계층에 따라 속악가사와 경기체가, 어부장가, 시조, 가사가 있다. 전자(前者)인 속악가사는 민요와 같이 서민에서부터 왕과 문벌귀족이 향유하는 궁중악장에 이르기까지 향유계층이 넓었으며, 후자(
)왕조창건기의 시조시조는 공식적 기능이라고는 없는 개인의 노래이다. 정치적 변동과 관련짓더라도 작자의 감회만 읊는 관례가 조선왕조가 이루어진 후에도 이어졌다. 고려를 회고하는 시조가 거듭 이루어져 시조가 개인적 노래임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
시조론』(삼영사, 1980) p75
중인계층의 사회적 위상 강화와 물질적 부의 축적으로 인하여 중인계층이 18세기 여항문학을 형성하였다는 논의는 1990년대 이후 성호경, 고미숙, 강명관에 의해서 활발히 이루어졌다. 성호경은 17세기의 후반 이래 성행한 삭대엽에서 여러 변주곡들이 파생 ․ 발달하게
시조는 조상들의 숨결을 담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창작되면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갈래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성이 있겠다. 그래서 본 발제지에서는 시조의 명칭과 발생, 율격구조, 문학적 분류 등에 대해 알아보겠다.
1. 시조의 명칭
1.1. 문헌상에 ‘시조’가 등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