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sabeth Borchers와 헬무트 하이센뷔텔 Helmut Heißenbüttel, 페터 헤르틀링 Peter Härtling, 페터 마이발트 Peter Maiwald, 그리고 보토 슈트라우스가 이러한 주제에 근접해 있다. 독일이라는 주제는 지식인들의 논쟁이라는 지엽적인 테두리에서 벗어나 독일인들의 일상적인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Ⅰ. 개요
양철북의 출판 이후에 나온, 그라스의 작품들에 대한 연구는 수 백편에 이르는데 그것들 중 많은 부분이 이 소설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비평이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고, 복잡한 알레고리나 종교적인 의미를 연구했던 반면, 소설의 유형, 서술 태도, 그
Ⅰ. 소설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막스피이겐에서 신교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성장과정은,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 소요 주모자가 된 점이라든지, 화가를 지망한 점 등을 미루어 보아 향토의 대선배인 켈러의 경우와 비슷한 점이 있다. 취리히와 베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나 문학과 자연과학
그라스에게는 회의와 멜랑콜리가 곧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회의와 멜랑콜리가 짙을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것은 ‘견디기의 몸짓’이다. 그라스가 우리에게 카뮈를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카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의 태도이다. 그것은 절망감을 주는 시대를 버티는
그라스에게 글쓰기는 곧 인식의 과정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에게 낯설게 혹은 불확실하게 느껴지던 것을 보다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그라스에게 단치히 3부작이 신비에 싸인 나치의 악마성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이었다면, 국부마취는 60년대 말 서독사회의
그라스, 발저, 엔첸스베르거 등 <47 그룹>의 작가들을 겨냥하면서 서독문학을 “도덕과 계약결혼한 문학”이라고 규정하고, 신념 때문에 예술성을 희생시킨 이들의 ‘신념미학’은 이제 끝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러 또한 “신학적․형이상학적, 관념론적․역사철학적 후견에서 자기해방된 문
Ⅰ. 귄터그라스의 역사인식
관념론적 역사파악의 요체를 이루는 것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이성이나 정신 등의 추상적인 힘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을 추구해 나가는 이런 추상적 힘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이야말로 본질적으로 진보를 나타낸다는 생각이다. 그라스의 역사개념은 역사를
그라스는, 역사를 논리일관한 법칙에 따라 직선적으로 진보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혼돈과 모순, 그리고 우연으로 가득찬 부조리한 반복 과정으로 파악한다. 또한 그는 전승된 기록문서에 바탕을 둔 기존의 공적인 역사기술이 엄청난 생략과 은폐와 날조의 토대 위에 이루어진 허구라고 믿고 있다.
1. 귄터그라스 (Günter Wilhelm Grass)
1) 출생 및 성장
귄터그라스는 1999년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며, 독일의 대표적인 참여지식인이다. 그는 1927년 독일 항구도시 단치히(현재는 폴란드)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폴란드계 소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라스가 김나지움에 진학
Ⅰ. 개요
인간됨이 그때마다의 나임을, 그의 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의 주체임을 뜻한다는 것은 “이성”이라는 용어에서 가장 분명하게 잘 표현된다.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한 지식과 인간 자신에게 속해 있으면서 그의 태도를 규정하는 이해와 판단이다. 신의 평화는 모든 이성으로 고양되었는데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