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음악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전근대의 문학은 사실 노랫말에 지나지 않는다. 예외적인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멀리 상고 시가로부터 향가나 고려 속요는 물론, 시조나 가사까지도 모두 가락에 얹어서 부르는 노랫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문학의 존재 방식은 개화기에 이르러 비로
고산 윤선도의 시조는 기교면에서 탁월하고, 특히 <어부사시사>는 시적 구성이 유기적으로 구조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의 시는 즉흥이라기보다는 주로 작흥에 의한 제작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아울러 그의 시조를 흔히 생활과 밀착되었느니, 또는 일상적이고 평범함 속에 아름다움을 찾는
Ⅰ. 서론
퇴계 이황이라는 사람은 한마디로 하면 겸허라는 두 글자이다. 그는 평생을 잘난 척하거나 자기를 과시하는 법이 없었던 것 같다. 겸허는 그의 행동뿐 아니고 글 속에 찬찬히 배어 있다. 죽음에 임해서도 그는 장례를 아무쪼록 간소하게 치를 것이요, 묘비는 조그만 돌에
1. 서론
중세적인 질서가 해체의 조짐을 보이던 18세기, 이념적인 면에서나 신분적인 굴레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중인계층은 그들이 획득한 부를 기반으로 예술 분야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당대 예술 중에서 사설시조의 새로운 담당층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력을
Ⅰ. 서론
조선조 사회에서 기녀의 역할은 매우 다양했으나 시조의 작가층으로서 그 존재의 의미는 사대부의 풍류의 장(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녀의 주된 교류와 사랑의 대상은 사대부로서 그들의 문화와 예술적 취향에 매우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기녀가 시조의 작가층에 자리 잡을 수
□ 대륙문화 영향 속의 삼국문화
• 전대의 문학을 우리는 집단적인 성격을 띤 민족 고유의 예술활동 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문화적으로는 재래의 민족 고유 신앙이나 생활 방식에 대륙 문화가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몽매했던 원시적인 상태를 벗어나 비로소 세계성을
Ⅱ. 본 론
1. 시조의 개념 및 명칭
시조는 고려 중엽에 발생하여 조선시대까지 활발하게 창작되던 우리 고유의 시가 양식이며 아직도 많은 문인들에 의해서 사랑받고 있다. 시조는 본래 시가에 대한 문학적인 명칭이 아니고 원래 음악의 하나인 창곡명이었다. 시조는 이전에는 신번(新飜), 신성(新聲
생활 속에서 많은 양의 漢詩를 남긴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으나 사대부로서 국문시가인 시조를 그렇듯 많이 남긴 경우는 이세보가 유일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는 시조창작을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인식했음이 틀림없다.
그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가 그가 다루었던 다양
시조작가·부녀자·기생·상인 등 서민들과 몰락한 양반이 불렀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수(字數)가 자유롭기 때문에 내용적인 면에서 양반·귀족처럼 관념적·고답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생활이 중심이 된 재담(才談)·욕설·음담(淫談)·애욕 등을 서슴없이 대담하게 묘사·풍자하고, 형식 또한 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