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王建:재위 BC 264∼BC 221) 때 다시 제나라로 돌아가 직하(稷下)의 학사(學士) 중 최장로(最長老)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훗날 그곳을 떠나 초(楚)나라의 재상 춘신군(春申君)의 천거로 난릉(蘭陵:山東省)의 수령이 되었다. 춘신군이 암살되자(BC 238), 벼슬 자리에서 물러나 그 고장에서 문인교육과 저술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며 세운 나라로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간 왕씨(王氏)가 34대에 걸쳐 집권했던 왕조이다. 건국 초기에는 나라의 기반을 다졌으며 6대 성종에 이르러서는 중앙집권적 국가기반을 확립하고 11대 문종에 이르러서는 귀족정치의 최 전성기를 이루었다. 18대 왕 의종이 쫓겨나고
왕건(王建)때의 중흥을 주장하였으며, 불교의 폐단시정을 목적으로 하는 척불론을 강조하였다.
Ex)도첩제(度牒制)를 실시하여 승려의 수를 제한하는 등 억불정책에 의한 점진적 개혁에 의하여 불교폐단 방지를 이루고자 하였다.
존왕주의적(尊王主義的)인 유교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서술에 임하였다.
왕건(王建)은 고려를 세운 다음해 이른 봄, 송악(松嶽:지금의 개성)에 수도를 정하고, 한편으로는 궁궐을 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시전을 세우고, 또 방(坊)과 이(里)를 구분하였는데 ‘방’은 상인들의 거리이고 ‘이’는 일반인들의 거주지역이었다. 방시의 상인들은 국가로부터 시전건물을 대여받
왕건(王建)이 935년에는 신라를, 936년에는 후백제를 병합하여 천년에 걸쳐 영화를 누렸던 신라문화도 함께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2. 경주의 연혁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12국 가운데 사로국(斯盧國)이 있었던 지역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B.C. 57년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이곳을 중심으로 서라벌(徐
王建(태조 왕건)이 전장에서 말을 달리기 40년 만에 이룬 새로운 통일의 역사 전개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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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 말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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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왕 계보
36대 혜공왕(惠恭)(765~780) 37대 선덕왕(宣德)(780~785) 38대 원성왕(元聖)(785~798) 39대 소성왕(昭聖)(798~800) 40대 애장왕(哀莊)(800~809) 41대 헌덕왕(憲德)(809~826) 42대
∙ 나말여초 시기의 불교사상 연구
- 1960~70년대 : 선종의 양적 성장에 주목
- 1980년대 : 교선양립, 공존에 주목
∙ BUT, 사상과 시대의 관련성 규명에 소홀
-> 시대 혹은 정치와 연관,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
※ 참고 논문
∙ 김두진, 1982, 「王建의 僧侶結合과 그 意圖」
- 왕건
고려를 세운 왕건
고려는 918년에 왕건이 세운 나라입니다.
왕건은 궁예의 휘하에 있었지만 이후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우게 됩니다.
왕건은 철원에서 고려를 세운후 1년후에 자신의 터전인 송악으로 도읍을 옮기게 됩니다.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은 신화적인 인물로 묘사가 되어 있고요 왕건의 아
왕건선세를 기반으로 한 해상세력의 기반
④ 왕건의 수군활동
3. 지식적 기반
⑴ 지방지식인
⑵ 지방지식인의 성장 배경
⑶ 지방지식인의 성격
⑷ 호족과 결합한 지방지식인의 활동
Ⅲ. 맺음말
Ⅰ. 머리말
앞서 지방 세력의 구성과 활동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에 더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지방 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