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거치고 이어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사회는 반상의 신분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사회변혁을 거치기 시작했다.
양란의 결과, 농경지가 황폐화되었고 조정에서는 묵은 밭의 개간을 적극 장려했다. 이를 기회로 지배층의 대토지 소유가 가능했다. 따라서 대다수의 농민은 토지를
세도정치
1. 세도정치의 의미- 종래의 일당전제마저 청산되고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가문일변도의 정치형태로서, 정권의 사회적 기반을 결여하였을 뿐 아니라 붕당 정치의 완전한 파탄을 의미 변태섭(1996), 『한국사통론』, 삼영사, p.357
2. 직접적 계기: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시파, 벽
그렇듯 지내다가 양친이 일시에 세상을 뜨니 춘풍이 망극하여 삼년상을 마친 후, 경계할 이 없으매, 남북촌 오입장이와 한데 휩쓸려다니며 하는 일마다 방탕하며 주야로 노닐며 누만금을 헛되이 낭비하니 천하 부자 석숭(石崇)인들 그 무엇이 남을손가. 이때에 춘풍이 아내 덕에 의복관망 치레하고 고
조선후기 사회상
- 임진왜란 이후 혼란해진 사회를 정비하기 위해 사회 전반적인 체제변화가 이루어진다.
1. 정치
붕당정치가 전개되면서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된다. 18C에는 붕당정치가 변질되어 일당전제화로 흐르게 되고 19C가 되면 왕의 외척이 세력을 독점하는 비정상적인 정치 형태인 세도정치
조선 문학사는 임진왜란 이후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되고,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조동일은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후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제1기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중세문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근대문학을 이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서로 불
조선후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제 1기이다. 중세문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근대문학을 이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얽혀 있으므로, 그 시기를 중세문학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을 잘못이고, 근대문학의 시발이라고 해도 무리가 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는
조선후기의 화폐경제 발달이나 잉여생산에 의한 상품경제의 발달은 상민층이 부를 축적하여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아래에서는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신분상승을 꾀한 상민층, 역에서 벗어나고자 신분상승을 꿈꾸었던 상민층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먼저 조선 초ㆍ중기에 양반
『어우야담』, 『청구야담』,『계서야담』 등과 같은 책의 표제로부터 그 명칭이 유래된 야담은 주로 한문으로 기록되어 비교적 짤막한 길이의 잡다한 이야기들의 총칭이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관하여 민간에서 전해온 이야기로 정의된다. 야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야사보다는 허구성이 중시
조선 전기 도학 사상의 영향을 받은 한문학은 예술과 철학이 결합된 형태인 순정문학(醇正文學)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 시기에 와서는 예술과 현실이 결합한 형태인 실학문학(實學文學)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또 실학파의 대두와 함께 상공업이 성장하고 그로 인해 부(富)를 축적한 서울 근교의 중
Ⅲ 조선전기 국문학의 흐름과 특징에 관한 개관
1. 조선전기의 국문학
1) 조선 전기 국문학의 개관
조선 전기의 문학이란, 조선조의 문학을 전, 후기로 나누었을 때, 조선 건국으로부터 임진란까지의 약 200년 간의 문학을 이른다. 조선 시대의 문학을 전 , 후기로 나누는 것은, 임진란을 경계로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