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박태원의 출생과 생애
박태원은 1910년 1월6일에 서울 수중박골(京城府 茶屋町 七番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성이고 고려 충선왕 때 밀성군으로 봉임된 척의 이십오대 손이다 조선총독부 보관본인 밀성 박씨세보에 의하면 증조 박승진은 장사랑, 조부 박두병은 삼서관을 지냈으며, 부친 박용환
서론
박태원은 1926년 『조선 문단에 시 「누님」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공식적으로 데뷔하였지만, 자신의 처녀작을 1929년 12월 17일 동아일보에 발표한 단편소설 「해사의 일야」라고 밝히고 있듯이 작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1930년이다. 그러한 이유로 한국 문학사에서 박태원이 위치하
박태원의 1930년대로부터 분명 모더니즘적이지만, 동시에 모더니즘적이지 않은 자질을 보다 능동적으로 도출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박태원의 대표적인 창작기법인‘고현학(考現學)’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자 한다. ‘기교의 문학’으로 평가를 받았던 박태원의 소설인 만큼, 창작기법이야말로 그의
박태원은 1910년 1월 6일, 청계천변의 ‘다옥정’에서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박태원의 아버지는 약국을 경영하였으며 가족분위기는 대체로 개화사상과 신교육에 긍정적이었고, 이런 가정환경이 박태원의 성장과 이후 창작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 교
그리고 박태원은 당시 시류대로 1930년에 가을 동경으로 건너가서 법정대학 예과에 입학한다. 당시 일본 유학은 식자층에 있어서는 보편화된 것이었기에 동경 유학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박태원은 일본에 도착한 뒤 숙소를 본향으로 정하지 않고 전단으로 택한 것에 대하여 두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