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성리학은 우리나라를 이끌어간 양대 사상이었던 것이다. 우암 송시열은 율곡 이이를 정통으로 이어받아 조선성리학을 심화시키고 현실에 적용하여, 조선후기 영정조 문예부흥을 이루는 근간이 되게 하였던 사상가였다.
송시열을 둘러싼 논쟁은 아주 다양하다. 60년대 70년대에 평가한 조선후기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에 필적하는 대가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문인들의 충절에도 불구하고,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잡지 못하고 한국한문학은 한말 4가 이후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와서 한문학은 문학사의 정면에서 퇴장하는 운명에 놓인다. 조선은 제국주의의 침략 앞에
조선 문인의 청나라에 대한 인식 연구」, 2010
먼저, 김창업의 「산천풍속총록」에 나타나고 있는 청나라 보통 민중에 대한 묘사들을 살펴보겠다.
청인은 풍채가 좋으나, 문치가 적다. 민족문화추진회 편, 『국역 연행록 선집』5, 한국학술정보 주, 2008, (原文p289, 譯文p128)
김창업은 만족과 직접
Ⅰ. 조선시대 교육사상가 퇴계 이황(성리학)
1. 교육의 사상
퇴계학은 16세기 조선의 역사적 산물이면서, 그의 역사의식과 인간의 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퇴계학을 성리학의 동방별종(東方別宗)으로 보거나, 아니면 한국 철학의 독자문호(獨自門戶)로만 이해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전자는 철학적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초등교육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서당이다. 서당에서는 초학자들을 대상으로 『천자문』과 같은 교재를 통해 기초적인 문자교육을 실시했으며, 나아가서는『동몽선습』,『사략』,『통감』,『소학』,『대학』,『논어』,『맹자』,『중용』등 유학의 기본 교재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