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학은 당시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신유학은 이후 명말의 혼란한 사회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명말에 등장한 진보주의사상은 명나라 말기 혼란한 사회 위기가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당시 등장한 태주학파와 동림학파는 혼란한
명말에 이르면 차츰 나라의 위기와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불교의 공무(公無) 이론을 제창하여 유교를 포기하고 선문(禪門)에 들어가서 현실을 도피하는 자가 많아 심학횡류(心學橫流)라는 비난을 받았다.
즉, 명대의 대표적인 사상은 바로 주자학과 양명학을 중심으로 하는 신유학이다. 이러한 신유
사상에서 이단으로 지목되어 왔듯이 양명학도 李贄로 인하여 이단으로 평가받은 적이 있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이단'이라는 용어 자체에서부터 그러한 이단으로 지목된 사상에 대해서는 일체의 접근을 못하게 하는 어떠한 힘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반면, 李贄로 인하여 양명학은 주자학보다 더 근
대한 새로운 모색을 꾀하려는 수고를 접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제는 재차 역전하여 성리학과 구별을 꾀하는 주장을 통해 시각의 다양성을 제안해 보도록 할 작정이다. 그리고 맺음말을 빌어서는 이러한 실학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새로운 각도로의 인식적인 견해를 통해 실학파에 관한 진지한 연구
진보주의적인 사상(思想)으로서, 객관성, 현실성, 상대성, 분석성, 구체성, 과학성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作爲와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두 요소는 서로 혼촌(混存)하여 있어 어느 한쪽만을 말하면 언어는 단편적이 되고 그 결과 서로 모순되기까지 하는 말들이 양립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