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과에 입학하여 1927년에 졸업했다. 그 때의 지도교수가 일본사와 인류학을 전공한 니시무라였는데 그의 영향을 받아 민속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차미숙, 2005「남창 손진태의 신민족주의사학에 대한 일고찰」금오공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p. 9.
이때부터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민
보아야 하며, 그 결과 제100조의 ‘현행법령’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설사 그것이 제100조의 ‘현행법령’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독립정신에 터 잡은 민족주의와 국민주권을 기본원리로 하는 1948년 헌법에 저촉되어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지금 20세기 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정체성의 형성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역사 교육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은 없었지만, 역사 교육은 결국 무엇이 ‘적절한’ 역사인가 하는 것에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또 여기에는 사회의 전반적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 날 토
신적 활동의 총체로서의 과거, 즉 객관적인 사실로 존재하는 과거를 말한다. 그 한계는 인간이 객관적 존재로서의 과거를 직접 인식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과거의 전체 모습을 반영하지 못해 역사가 아니라는 말도 있다.
둘째는 기록으로서의 역사이다. 역사가에 의해 한번 걸러진 과거, 즉
☞카프 문인들의 1차 방향전환과 2차 방향 전환에 있어서 정치 이념적 차이에 대해 보충설명을 한다면?
염군사 계열과 파스큘라 계열의 합작으로 카프가 결성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시기에 염군사는 실천적인 면에, 파스큘라는 문단적인 위치에 있어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