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 문학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고 ‘타방 밭은 교양을 가지고 평론이나 사설짜박지니’를 쓰면서 생활을 연명해 나갔던 김남천이지만, 리얼리즘으로 향한 정신은 그칠 줄을 몰랐고 그 근저에 놓인 부정의식은 바로 현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창작의 열정으로 전화되어 갔다.
김남천/등불』, 지학사, 1990, 323쪽
또한 김남천은 부르주아 집안 출신답게 훤칠한 키와 귀공자 풍의 외모에 항상 깔끔한 옷매무새를 갖추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김남천의 문학과 생활에는 귀공자풍의 외모나 전원의 아늑함과는 상이한 측면도 많다. 그가 열다섯 살에 평양으로 올라가 평양고보에
1. 작가의 생애
김남천은 1911년 평남 성천에서 중농이며 공무원이던 김영전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본명은 김효식이다. 1926년에는 평양교보를 다니며 한재덕 등과 ‘월역’이라는 동인잡지를 내면서 「문예전선」등속의 신흥문학에 관심을 가진다. 1929년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동경에 건너가 호세이 대
현실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하려 했으며, 당시의 사회와 환경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그에게 닥쳤던 외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생각의 변화, 그리고 변화된 생각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살핌으로써 김남천이
자신들의 일제강점기의 유휴성을 감추기 위한 방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김태준을 매개로 하여 ‘조공’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부단하게 문화의 통일전선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결점을 덮어 보려는 의도가 내재하였었다.
②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이에 대하여 ‘조선프롤레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