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主璟仍然不從。
당주영잉연부종
당나라 군주 이영은 여전히 따르지 않았다.
至李德明被殺, 雖由宋齊邱、陳覺等從旁慫?, (見五十五回。)延己也串同一氣, 斥德明爲賣國賊, 應該伏誅。
지이덕명피살 수유송제구 진각등종방종용 현오십오회 연기야관동일기 척덕명위매국적 응해복주
串同[chuantong]
却說河中叛帥李守貞, 被圍逾年, 城中糧食已盡, 十死五六, 眼見是把守不住。
각설하중반수이수정 피위유년 성중양식이진 십사오육 안견시파수부주
각설하고 하중에서 반란한 괴수인 이수정은 포위된지 1년이 넘어 성안에 양식이 다 떨어져 10에 5,6은 사망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지켜내지 못함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에 걸쳐 동아시아의 정세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명과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을 때, 滿洲에서는 누르하치(奴兒赤; 1559~1626)가 여진족을 어울러 후금국을 건설함으로써, 명청 교체의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누르하치는 성시를 수축하고 관
국문학선독 족보 레포트
1. <직계표>
1세 시조 李碩 (이 석)
↓
2세 일남 李子脩 (이 자수)
↓
3세 이남 중 장남 李云侯 ( 운후 )
↓
4세 이남 중 장남 李禎 ( 정 )
↓
5세 삼남 중 삼남 李繼陽 ( 계양 )
↓
6세 이남 중 장남 李埴 ( 식 )
↓
7세 육남 중 육남 李滉 ( 황 )
↓
8세 삼남 중 장남 李寯 ( 준 )
↓
9세 삼남 중
「虎叱」再考察
목차
Ⅰ. 서론
Ⅱ. 「호질」의 작자론
1. 연암 창작설
2. 중국인 원작자설
Ⅲ. 「호질」의 주제론
Ⅳ. 결론
Ⅰ. 서론
18세기 조선이 낳은 저명한 사실주의 작가 燕巖 朴趾源은 사상가로서나 문학가로서 우리 나라 고대 중세의 전 시기를 통하여도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