品階石)이 각각 12개씩 배열되어 있다. 원형 주좌의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창방과 평방을 짜올린 다포계로 공포는 외삼출목(外三出目)·내사출목(內四出目)으로 궁궐건축의 상례를 따르고 있다. 외부 살미첨차는 3중으로 앙서를 조작하였고, 기둥머리에는 후기 건물에서 흔히 쓰는 안초공(按
창경궁(昌慶宮)
▶창경궁(昌慶宮)
창경궁(昌慶宮)은 성종 14년(1483) 조선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원래 이곳에는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1418년에 건립한 수강궁(壽康宮)이 있었으나 성종은 세조의 비 정희왕후와 생모가 되는 소혜왕후와 양모인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편하게 모시
금천교(錦川橋)는 창덕궁 돈화문(敦化門)과 진선문(進善門)사이에 흐르는 금천(禁川) 창덕궁의 명당수(明當水), 금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돈화문 오른쪽까지 와서 궐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어구(御溝)물가에 화강석 6~7기단을 가지런하게 쌓은 추대를 설치하였고, 여기에 금천교를 설치하
창경궁(昌慶宮)은 원래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上王) 왕조시대 현왕(現王) 이외에 전왕(前王)이 살아 있을 경우 전왕을 부르던 호칭.
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이었다.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 2월부터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한씨, 예종의 계비(繼妃) 임
주요궁궐의 관광자원
우리가 흔히 섞어서 쓰는 궁(宮)과 궁궐(宮關)은 그 규모나 용도가 엄연히 구별된다.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경희궁 ․ 덕수궁과 같은 곳은 궁궐에 속하며, 이들을 5대궁이라고 한다. 안동별궁 ․ 창의궁 ․ 선희궁 등은 궁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궁
경복궁은 태조 4년에 창건된 조선의 정궁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한 다음 천도할 것을 결심하고, 이듬해에 경복궁을 건립했지요. 이 궁은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없어졌으며, 그 후 왕궁으로서 불길하다는 이유로 273년간이나 중건되지 못하였다가 고종 때 중건되었습니다.
3.창덕궁(昌德宮)의 건물
1) 돈화문(敦化門)
보물 383호로 지정되어있는 돈화문(敦化門)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우진각지붕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
다포(多包) 기둥머리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짜 올린 공포(拱包). 주로 조선 전기부터 많이 썼다.
건물이다. 창덕
태종 5년(1405) 준공된 창덕궁은 조선시대 두 번째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은 태조가 짓고 이를 중심으로 종묘와 사직이 배치되어 한양이 설계되었기 때문에 가장 권위가 있었지만 조선조 국왕이 실제 가장 오래 머문 정치 생활공간은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과 그에 가까운 창경궁이었다.
조선전
Ⅰ. 답사 장소 선정 이유
답사 장소를 정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조원들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우리나라 4대 궁궐의 이름들을 하나 둘씩 이야기하였다. 멀리 교외로 나가지 않아도 조선의 고풍을 느낄 수 있는 궁궐들이 서울 시내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답사지를 궁궐로 정하게 된
Ⅰ. 종묘(宗廟)
종묘는 사적 제 125호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신궁(神宮)이며,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태조(太祖)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그 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고, 개성에서 태조의 4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