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이고 강력한 개혁사상을 가지고 있던 북인계열을 몰락시킨 인조반정 이후 정권다툼은 남인과 서인으로 좁혀졌다. 그중에서도 우암 송시열은 율곡 이이에서 사계 김장생을 거쳐 내려오는 서인의 정통 학맥을 이어온 인물로서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암이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을
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이때는 사화 직후라 사람들은 그가 공부에 독실함을 보고 ꡐ광인(狂人)ꡑ이라거나 혹은 ꡐ화태(禍胎)ꡑ라 하였다. 친구들과도 자주 교류가 끊겼으나 그는 전혀 개의하지 않고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한다. 한편, 평소에도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언행도 성현의 가
1. 사림[士林]이란
사림[士林] = 유교를 닦는 선비 집단
<<고려사>>의 유학을 닦은 관료에 대한 표현
유사(儒士), 유신(儒臣), 유학자(儒學者) 과 같은 표현 사용.
->麗末 ,신유학(新儒學)의 도입 이후
사대부(士大夫), 사인(士人), 사류(士類), 사족(士族)
※ 신유학이 수용되면서 고려의 문사들도 사
훈구(勳舊)와 사림(士林)의 대립 구도는 성종에서 연산군, 그리고 중종에 이르는 시기에 집중 부각된다. 그리고 명종 대를 마지막으로 훈구는 사라지고 사림이 주도권을 잡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훈구세력들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세조(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기점으로 세조를 지지하
Ⅱ. 士林의 進出과 言論活動의 强化
홍문관의 기능 확대에는 성종이 홍문관을 통해서 재상들을 견제하고 주도권 장악을 위한 지원이 크게 작용하였지만 홍문관원의 적극적인 노력의 소산이었다. 어사파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유향소문제까지 제기했던 것에서 그들의 적극적인 노력을 잘 보여
애니미즘(animism)
무생물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 물신숭배(物神崇拜)·영혼신앙(靈魂信仰) 또는 만유정령설(萬有 精靈說)이라고도 번역되는 애니미즘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아니마(영혼)에서 나온 말이다. 영국의 인류학 자 E.B.타일러가 《원시문화》(1871)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애
士林政治論)’이 제기되었으며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본 발표문에서는 조선중기 정치형태, 특히 17세기 정치형태에 대한 이론들 ‘당쟁론’, ‘붕당정치론’, ‘사림정치론’을 살펴보고, 이들 중에 정치형태로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림정치론’을 중심으로 조선중기정치의 운영
政治와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붕당정치는 향촌사회의 서원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림의 공론에 입각한 정치였던 것이다. 서원은 중앙 정치 문제에 대한 향촌 사림의 일차적인 여론 결집 거점이 되면서 점차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이는 향촌사회에서 사족의 활동 기반이었던 유향소와 향교 및 향
士林)은 집권세력인 훈척의 비리와 부도덕성을 비판하고, 어려웠던 당시 상황을 성리학적 이념과 제도로 극복하고자 했다. 1515년 조광조 등 기묘사림의 중심 인물들은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비롯한 요직에 두루 포진하여 본격적인 개혁 추진에 나섰다. 정옥자 외,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서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