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장례 풍습으로 말하면 장례를 총괄하는 집행부는 국장도감이,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는 일은 빈전도감이, 장지에서 묘를 만드는 일은 산릉도감이 담당했다고 보면 된다. 또한 빈전도감과는 별도로 혼전도감(魂殿都監)이 설치되었는데, 이곳은 장례를 치른 후 가신주(假神主: 뽕나무로 만
제 1 장 서 론
1절 왕릉이란
왕릉이란, 흔히 왕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왕의 무덤 뿐만 아니라 왕비의 무덤까지 지칭합니다.
그리고 무덤의 종류에는 능, 원, 묘가 있습니다. 능(陵)이란, 왕과 왕비의 무덤을 지칭하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44개의 능이 남아있으며 대표적으로는 건원릉
1. 머리말
근래 기록문화의 발달과 함께 2006년 정부가 의궤를 세계기록유산 의궤 외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철(프랑스 소장), 승정원일기, 팔만대장경.
으로 등재해줄 것을 신청, 2007년 6월 14일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의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의궤란 ‘의례의
국장을 2년 2개월이나 연기하면서 자주와 독립을 위한 기초를 다졌다. 왕후의 국장은 3년만인 1897년 11월 22일에 치러졌다. 국장 40일 전인 1897년 10월 13일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왕후는 명성황후로 추존되었다.
대한제국의 성립은 직접적으로 일미지변의 소산이다. 고종은 황후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
국장(國葬)을 맡아 진행할 임시 기구들인 빈전도감(殯殿都監) 빈정도감은 국장이 났을 때, 장례일까지의 염습(殮襲), 성빈(成殯), 성복(成服) 등 빈전에 관한 일을 맡아보기 위하여 나라에서 임시로 세운 관청.
․ 국장도감(國葬都監) 국장도감은 재궁(梓宮), 거여(車與), 책보(冊寶), 복완(服玩), 능지(
도감의궤』는 왕실의 혼인 절차와 의례 절차, 진행 순서 등이 담겨 있다. 반차도가 그려져 있어 당시 행사를 그림으로 소상히 알 수 있다. 『국장도감의궤』는 임금의 장례에 관한 의궤이다. 장례 중에 새 국왕의 등극이 이루어져 국왕 등극에 관한 의궤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종이 생전에 세종에게 왕
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가 있다. 여기에 나타난 가례는 곧 왕실의 혼인 의식, 그중에서도 특히 왕이나 왕세자의 혼인을 뜻하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국왕의 장례에 관한 기록인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가 있다. 여기에는 재궁, 각종 수레, 책보(冊寶), 각종 의장, 제기(祭器)의 제작에
도감의궤』, 국왕의 장례에 관한 기록 『국장도감의궤』, 왕조의 통치 질서를 표현하는 제사를 기록한 『종묘의궤』와 『사직서의궤』, 실록의 편찬과 보관에 관한 기록 『실록청의궤』, 왕실의 도장에 관한 기록 『보인소의궤』, 정조의 화성 행차 8일간의 대장정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조
도감의궤》나 당시의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과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초 동구릉의 숭릉 오른쪽 언덕에 숙릉을 조성하다 국장이 중단된 후 김홍집 내각을 처단하여 국장을 거의 1년 연기하여 1897년 1월 9일에 홍릉을 조성.
그해 1897년 11월 청량리 천장산 아래 새 장지를 정하고 국장을 치르게 되니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