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송
▪ 태조
오대 난리로 상실된 제국의 도서를 수습했다. 망실된 서적을 수집하기 위해 태조때부터 휘종때까지 서적의 헌납을 장려했다. 삼관에 후주 장서 13,000여 책이 수장되었다. 여러 차례 결서목록을 편찬하여 모두 6705부 73,877책으로 양적으로 증대되고 교수된 선본을 갖추었다. 한역 대장
중국 글자(한자)
Ⅰ. 서론- 한자의 기원
한자가 처음 만들어진 것에 대하여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전설(傳說)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 황제(黃帝)시대에 기록하는 일을 담당한 창힐(蒼頡)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문자를 창제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이 전설은 한 나라 때 이미 전해져 있
한국의 목판본(木版本)과 목활자본(木活字本)
<목 차>
Ⅰ. 머리말
Ⅱ. 한국의 목판본
(1) 특징과 역사
(2) 제조 및 인쇄 방법
Ⅲ. 한국의 목활자본
(1) 특징과 역사
(2) 제조 및 인쇄 방법
Ⅳ. 맺음말
Ⅰ. 머리말
책의 발달사를 살펴보았을 때, 사본(寫本)의 다음 단계로서 책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보급하는 인
목판본, 활자본이 있다. 이 가운데 목판본으로 경판(京板 _ 35장본/30장본/17장본), 완판(完板 _ 30장본/33장본/84장본), 안성판(安城板 _ 20장본)의 삼 종에다 소재가 불확실한 완산판 《별춘향전》을 포함하면 4종이 된다. 사본(寫本)은 국.한문을 합하여 20여종, 한문본 3종, 20세기에 들어서 활발해진 활자본 2
목판본 활자본 필사본 중 한남본(경판 24장본)이 이에 해당된다는 것은 논자에 의해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계속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1989년에 송성욱 박사에 의해 경판본 중 야동본(경산 30장본)이 추가 제시되면서 한남본과 야동본의 대비에서 상업주의의 축소 원리가 적용되어 논자의 한남본 최고본
목판본. 김전(金詮)·최숙생(崔淑生) 등이 언해하여 1518년(중종 13)에 간행하였다. ≪소학집성 小學集成≫을 저본(底本)으로 하였기 때문에 권수가 10권이 되었다. 남곤(南袞)의 발문(跋文)에 간행 경위가 자세히 적혀 있다.
한편 ≪중종실록≫에는 이 책이 1518년 7월에 간행되어 1,300질이 널리 배포되었음
목판본 12종, 필사본 2종, 활자본 11종이 전한다. 대부분의 고소설 목판본은 서울에서 간행된 경판본, 안성 지방에서 간행된 안성판본, 전주 지방에서 간행된 완판본이 있다. 그런데 <금방울전> 목판본은 경판본만 전하며, 완판본이나 안성판은 전하지 않는다. 이 장에서는 고전소설강독3공통) 1. [이춘
Ⅰ. 서 론
1.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필사본·목판본·활자본이 모두 전하며, 이들을 표기문자에 따라 다시 한글본, 한문본, 국한문본으로 나눌 수 있다. 한글본은 효종연간에 전동흘 ( 全東屹 )이 평안도 철산부사로 가서, 배좌수의 딸 장화(薔花)와 홍련(紅蓮)이 계모의 흉계로 원통하게 죽은 사건
- 불교가사의 사적 변천 -
목 차
1. 머리말
2. 문헌의 분포 양상
(1) 목판본
(2) 필사본
(3) 활자본
3. 문헌 전승의 시대적 추이
(1) 1718세기
(2) 19세기
4. 맺음말
1. 머리말
불교가사의 텍스트 가운데 객관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최초의 원전이나 작가를 규명할 수 있는 최초의 작품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